2009년 6월 27일 토요일

090628_주안에서 강하라(손)

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제목: 주 안에서 강하라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가 더 잘자라가기를 원합니다. 다른 아이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혹시 영재가 아닐까? 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것을 요구합니다. 강하라. 그러나 성경의 강하라는 세상의 개념과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

 
 

1.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7-9)

육체의 가시-상징적인 표현.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세번이나 하나님앞에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세번이나 기도했습니다. 바울에게 그의 기도를 응답해주신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고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도바울에게 하나님은 응답해주시지 않았씁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 기도하는데로 다 들어주시는 것이 능력인데.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사람. 그런데 왜 자기의 질병은 치유되지 않았을까? 바울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은혜?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신앙?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려움은 은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신다고 하셧씁니다.

 
 

1)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3층하늘을 체험함. 대기-첫째하늘, 우주-둘째 하늘, 천국-셋째하늘. 자기의 간증을 하고 잇습니다. 계시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육체의 가시를 주심. 사도 바울을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심. 고난이 없는 사람. 무엇이든지 잘 이루어지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예)다윗 - 광야의 고난의 시기. 항상 충만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광야의 기간. 훈련의 기간이 가장 안전한 기간이었습니다. 가장 강했을 때. 부와 권력과 능력을 취하고 있을 때 다윗의 인생은 가장 위험한 시기를 보내는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할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누릴 것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내것으로 누리지 않고, 누릴 수 잇는 사람을 누리지 않을 수 잇는 사람. 그사람이 가장 축복되고 강한 사람입니다. 다윗을

 
 

2)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속의 은혜는 우리에게 족합닏.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우리에게는 만족할 수 없는 어려움. 하나님이 우리인생을 사용하시는데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데로 잘 되지 않고. 우리 인생이 그렇게 술술 풀리지 않는다 할 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강한 사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편에서는 걸림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신앙에대한 회의가 찾아옵니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무엘하 22: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to the pure you show yourself pure, but to the crooked you show yourself shrewd

하나님을 불신앙의 모습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십니다. 바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사도 바울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소망 -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게 바꾸실 만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데로 다 소유했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약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만족이 없을 때. 내가 살아야될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가시와 같은 어려움이 지속된다고 할 지라도,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구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사람은 은혜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무엇을 소유하는 것에 따라 만족을 얻는 사람. 우리의 존재는 항상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주님안에서 특별한 것입니다.  

 
 

3)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교회? 세상의 권세있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의 철학. 세상의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는 교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교회. 세상의 어떤 철학이 발붙이지 못하는 교회.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못합니다. 예수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는 저런 것이 불가능할텐데. 세상을 사랑하면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세상을 잃어벌릴까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쫓아간다면 세상이 우리들에게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약해지는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나타납니다. 약할 때 강함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우리의 강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 가운데 능력이 없어 하나님앞에서 약해지기로 선택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노력합닏. 나를 강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영적으로는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나의 강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강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비결입니다.  

 
 

2. 약한 바울을 강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10)

 
 

1) 약한 것을 기뻐함

나를 위해 살고자 하면 고난을 피할 수있습니다. 예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어려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내가 약해질 수 있다는 인생관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된느 것을 보면 기뻐하는 것이 힘이듭니다.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잘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살게될 때 기꺼이 그것을 기뻐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사람 Something 보다는 하나님의 인생의 목적. 형편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위해 약한 것도 자랑할 수 있는 가지관이 되었습니다. 강하면 강할 수록 하나님이 들어나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로 이끄는 사람. 내가 흠이 없고 능력이 많아야겠지만. 내가 부족함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2)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인생관을 가짐

빌 3:7,8

우리의 옛사람은 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옛사람. 죽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들과 함께. 나의 의때문에 체면때문에 너무나 괴롭습니다. 베드로 - 예수를 위해 죽고자 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없이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살것인가? 예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 18, 21, 22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감사가 없어지고, 불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좇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대로, 단순히 예수를 위해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위해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런 삶을 도전하기 위해 믿음으로 싸웠던 인생입니다. 내가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아서 예수를 위해 살게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고백. 그의 인생의 전체였습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강하라. 너무나 약하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위해 신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약하다 할지라도 예수를 위해 세상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잇다는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만을 위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009년 6월 20일 토요일

1.일자: 2009. 6. 21

1.일자: 2009. 6. 21

2.성경: 요14;25-26

3.제목: 성령님이 하시는 일

4.찬송: 172장

 
 

성령의 시대에 성령을 따라 살지 않는 것은 영적인 소경과 같습니다. 죄로 인해서 우리의 이성이 죽었기 때문에 바른 분별력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볼 능력이 없기 때문에 안경을 쓰는 것과 같습니다. 무슨 도움이 필요하겠습니까? 예수님과 성령님이 필요한 것입니다. 성령님에 대해 연속해서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1.모든 것을 가르쳐주심

 
 

1)진리와 거짓을 가르쳐 주심

진리가 무엇이고, 거짓이 무엇인가? 진리의 영. 거짓이 없는 영입니다. 진리가 아닌 영과 분간이 됩니다. 사람속에 감추고 있는 모든 것을 드러냅니다. 히4:12-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깊이 찔러 쪼갬.

 
 

고전 2:10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행 5:3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사단이 가득한 것을 보임. 사람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이는 죄입니다. 성령을 속이는 죄입니다.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을 거역하는 것을 금방 캐치하게 합니다. 사단의 조정을 받는지, 성령의 인도를 받는 지 금방 알게됩니다. 성령을 속일 수는 없습니다. 무엇이 진리고 거짓인지 분별하게 하십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 - 무엇이 그르고 잘못된 것인지 분별이 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지 못하면 바리새인과 같이 이것이 잘하는 것인지, 잘못된 것인지 깨닫지 못합니다. 성령을 무시하고 자기 뜻대로 하면 근거가 없는 것입니다.  

 
 

2)하나님의 뜻을 가르쳐 주심

하나님의 뜻을 다 알 수가 없습니다. 성령을 받아야만 하나님의 깊은 뜻을 통달하게 됩니다  

 
 

a.영적인 일에 대한 것

하나님의 영적인 일에 대한 생각. 성령을 받지 못하면 인간적인 생각을 의로운 하나님의 생각으로 오해합니다. 사람의 생각을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내말이 옳다는 자기 주장. 100사람이 다 옳아도 성령님은 아닐 수 있습니다.  

 
 

잠 14:12 어떤 길은 사람의 보기에 바르나 필경은 사망의 길이니라

사람이 보기에는 정말 바른 길이라도 망하는 길이 될 수 잇습니다. 같은 교단, 같은 신학, 같은 교리를 고백하는 사람들이 다 틀린다 하더라도. 한 성령을 가진 사람이라도 서로 통합니다. 같은 마음, 같은 성령이기에 나누어 지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기질 마다 다 나누어지기 때문에.

안디옥교회 - 선교사를 어떻게 파송했습니까? 투표합시다. 그렇게 하지 않앗습니다. 금식하면서 간절히 기도할 때 모든 사람이 성령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바울과 바나바를 따로 떼어내서 선교사로 보내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기도를 하지 않았다거나, 다수결로 했다면 그런 사건을 이루기 어렵습니다. 기둥같은 사람들이 바울, 바나바입니다. 작은 교회에서 기둥같은 바나바를 보낸다는 것. 한꺼번에 보낸다는 것은 어려운일.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일. 성령이 하게 하시니까 그렇게 합니다. 만약에 기도하지 않는 사람 - 인간적인 좋은 의견을 냅니다. 모든 회중이 투표를 한다면 인간적인 사람의 생각이 선정이 되게 합니다. 사람이 보기에 좋은 것.

술문제 - 기독교에 내에도 여러 의견이 잇습ㄴ디ㅏ. 성령님 만이 그 문제에 대답을 주십니다. 성령을 충만한 사람이 술과 담배가 끊어지게 되는 것이 성령의 대답입니다. 기도를 통해서 성령이 충만한 사람에 의해 대답이 됩니다. 성령께 물어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b.세상 일에 대한 것

이세상은 항상 문제가 있습니다. 이세상은 사단이 다스리는 죄를 통해 이루어지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국가, 교육, 보수, 진보, 항상 문제가 잇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항상 자기 실제적인 문제를 다루었습니다. 그들이 살던 시대, 로마의 식민지 시대, 정치적 억압의 시대, 폭정속에서 지배를 당하는 시대. 항상 문제가 해방, 먹고 사는 문제가 있엇습니다. 행1장 - 약속하신 성령을 기다리라. 성령에 대한 유언. 성령세례에 대한 유언은 별로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말을 듣고,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이 언제가 되겠습니까? 로마에서 언제 독립이 되겠습니까? 그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 그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 속한거. 너희는 알바아니오. 너희는 오직 성령의 권능르 받으라. 빌라도의 앞에 섯을 때에도 내가 유대인의 왕이라. 내 나라는 이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으신 것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였습닏. 사람의 뜻대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심. 하나님의 뜻대로 하라. 세상이나 교회나 죄인이 있는 곳에는 항상 분쟁, 대립, 갈등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툼과 분쟁이 항상ㅇ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속성입니다. 이것이 어떤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알려주십닏. 성령께 구하지 않으면 자기의 뜻대로 살아갑닏. 중요한 것은 내 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유대인을 이기게 하는 방법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죽는 방법으로 하셧습니다. 왜 꼭 그렇게 하셧습니까? 이것을 세상이 이해하겠습니까? 십자가에게 미련한 것이라. 구원을 얻는 방법. 성령을 따라 살지 않으면 미련하게 보입니다. 십자가의 방법이 지혜롭게 보이는 사람만 그렇게 살수 잇ㅆ브니다. 겉사람은 후폐하더라도 주님 안에서 새롭게 되는 것입니다. 내 의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 앞에는 인정이 되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를 원하지 않습니다. 바라바를 원합니다. 군중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으라. 대제사장의 사주를 받아 사단의 악한 도구로 사용되었습니다. 바라바를 내어주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이시대를 분별하는 우리가 될 수 잇기 바랍니다. 성령은 예수님의 말씀으로만. 깨닫고 생각나게 하십니다.


 

요 18:36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한 것이었더면 내 종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넘기우지 않게 하였으리라 이제 내 나라는 여기에 속한 것이 아니니라

 
 

 
 

2.말씀을 생각나게 하심

갑자기 생각이 나게 하십니다. 성령께서 그 시에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1)일이 일어났을 때 생각나게 함

지금은 아무 의미없이 들릴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말씀이 어떤 사건을 만났을때 갑자기 생각이 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사건을 통해서 그 말씀이 실제적으로 역사하게하십니다. 예수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베드로에게 말씀하심. 3번 나를 부인하리라. 세번부인한 후에 깨닫게 해주실 때 회개가 되었습니다. 성령이 자기 죄를 깨닫게 해주실 때에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요엘2

그 후에 내가 내 신을 만민에게 부어 주리니 너희 자녀들이 장래 일을 말할

것이며 너희 늙은이는 꿈을 꾸며 너희 젊은이는 이상을 볼 것이며

그 때에 내가 또 내 신으로 남종과 여종에게 부어 줄 것이며

내가 이적을 하늘과 땅에 베풀리니 곧 피와 불과 연기 기둥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변하려니와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 이는 나 여호와의

말대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피할 자가 있을 것임이요 남은 자 중에 나

여호와의 부름을 받을 자가 있을 것임이니라

성령이 아니고는 말씀이 생각나지 않습니다. 성경을 잘 알지 못하는 베드로 사도. 오순절 성령을 받은 베드로. 금방 이 사건을 보고 금방 분별을 하엿습니다. 금방 깨달았습니다. 이것이 ㅣ말씀을 깨닫고 역사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금방 알았지만 경건한 유대인은 그 말씀이 자기와 전혀 상관이 없었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으로 그것을 분별할 수 잇는 것이었습니다.

 
 

2)일이 지난 후 생각나게 함

마지막 입성후에 나귀새끼를 타고 입성하심. 유대인. 나귀새끼 슥 

 
 

슥 9:9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나니 그는 공의로우며 구원을 베풀며 겸손하여서 나귀를

타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새끼니라

뻔히 예수님이 타고 가시는 것을 보면서도 예수님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스가랴의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면서고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한 참이 지난후에 깨닫게 되었습니다.

요 12:16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 줄 생각났더라

그때서야 깨달았습니다. 성령으로 깨닫게 되엇습니다. 성경은 어떤 사람은 간증거리가 되고 말씀이 되는가? 지식으로 듣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은 말씀은 듣기는 들어도 성령을 거스리는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멸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을 소멸치말라. 성령이 없으면 예배는 드릴 수 잇으나 말씀이 자기에게 역사하게 할 수는 없습니다. 자기 생각이 아직도 성령의 생각에 앞서는 사람. 말씀이 뭐라고 하던지 자기 생각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는자에게 주시는 것입니다. 한 번 주었는데도 무시하는 사람은 성령이 그 사람에게 주시지 않는 것입니다. 인본주의 적인 신앙. 사람이 보기에 좋은 신앙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바꾸엇 사람의 생각으로 하는가? 인간적인 사람에게 더 설득력이 잇습니다.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서 모든 일에 사람의 뜻을 받아서 살아가는 신앙이 아니라.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서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2009년 6월 13일 토요일

090614_예수님을 사랑하는자의복

1.일자: 2009. 6. 14

2.성경: 요14:21-24

3.제목: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의 복

4.찬송: 411장

 
 

 
 

1.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의 실제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의 특징 

 
 

1)예수님의 말씀을 가짐

가진다? - 믿고 받아들임. 영적 상태에 따라 그렇게 들립니다. 사람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렇게 들리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들리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을 려고 해도 들려지지 않습니다. 사람의 말. 세상의 말도 전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으로 부터 전해지는 말씀은 잘 들려지지 않습니다. 굉장히 이해가 되고 세상의 말은 잘들리지만 잘 안들림. 누구든지 말씀이 들리고, 믿어지고, 믿어지는 말씀에순종이 되는 것에 내 영적인 상태가 속해져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요일 4:5 저희는 세상에 속한 고로 세상에 속한 말을 하매 세상이 저희 말을 듣 느니라

요일 4:6 우리는 하나님께 속하였으니 하나님을 아는 자는 우리의 말을 듣고 하 나님께 속하지 아니한 자는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하나니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이로써 아느니라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 하나님의 영의 말을 전하면 하나님께 속한 사람은 기가 막히게 그것을 알아듣습니다. 무슨 말씀은 안들리는데 어떤 말씀은 잘 안들리는가? 이것을 알아야합니다. 세상에 속한 사람은 세상에 속한 말에 관심이 있습니다. 드라마는 5분전에 사모하면서 기다리면서 예배시간은 30분 늦습니다. 세상의 말이 들려지고 그말에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가 보고듣는 말이 들려짐으로, 세상에 속하면서. 세상의 믿음이 생기면서 세상에 속해집니다. 감옥에서의 죄수자. 매일 듣는 것이 그것입니다. 하ㅏㄴ님의 사람. 들려지니까 믿어지고, 믿어지니까 행하게되고 역사가 일어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들려지면 그 말씀이 남게됩니다. 내가 그 말쓰을 가지고 있게 됩니다. 귀로 가지게 되었다가 교회만 나가면 없어집니다. 길가에 뿌려진 씨앗.

 
 

요 15:7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말씀을 지키는 자. 믿음으로 기도가 응답이 되는 것입니다. 허공에 치는 메아리 같은 것은 무기력합니다. 내 안에 남아 있는 말씀의 씨를 통해서 에수의 권세가 들어나게 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받기를 원한다면 세상의 것을 끝어야합니다 세상의 말씀을 끊어야합니다 그렇게 할 때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변화시키는 것입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면 그 말씀이 남아있어야합니다.

 
 

 
 

2)예수님의 말씀을 지킴

말씀을 지킵니다. 인내로 지킵니다. 지킨다 - 들은대로 행한다. 어떤 말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기가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듣게 되어있습니다. 아무리 옳아도 그 사람이 싫으면 그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가 존경하는 사람의 말은 나에게 손해가 되어도 지키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누가 순종하는가?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순종합니다. 영적인 것은 육신적인 이성으로는 다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 이해못합니다. 왜그런지 다 이해되지 않습니다.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은 논쟁을 합니다. 이해가 되서 믿으려고 하면 이론적인 사람이 됩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믿게 도어 있습니다. 아무나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그것과 다릅니다. 외적인 조건을 넘어서 자기와 같은 영끼리 사랑하게 됩니다. 사랑이 가게 됩니다. 영맥입니다. 세상적인 사람은 그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몰라도 세상적인 사람이 사랑이 됩니다. 내가 누구를 미워하고 사랑하는가? 누구는 이유없이 사랑이 되는가? 조건이 아닙니다. 전혀 알지도 모르는 사람이 은혜를 받으면. 강도같은 사람도. 은혜를 받으면 좋아하고 싫어하는 사람이 전혀 달라집니다. 은혜를 받으면 만나기도 싫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 달라지고 전혀 모르는데도 달라집니다. 영이 같아 졌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어지면 믿음의 사람이 싫어집니다. 세상적이고 인간적인 사람이 좋아져 보입니다. 자기 영이 좋아하는 사람, 싫어하는 사람을 나누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수님의 영에 속해져 있기 때문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순종이 되어집니다. 남이 하는 것은 나도 할 수 잇씁니다. 남은 다 들리고, 다 하는데 왜 나는 안되는가? 나의 노력의 문제가 아니고 영적인 문제입니다. 내가 안할려고 해서 그런것인가? 그런 차원이 아닙니다. 그런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변화되지 않는 사람. 헌가죽부대를 버리기 전까지는 변화되지 않습니다.

 
 

롬 6:16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사망과 생명이 왔다갔다하는 문제를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동시에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순종하면 예수님께 속한 사람이 됩니다. 아무것이나 다 거부하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에 나가서는 다 잘듣습니다. 순종하는자에 속해서 그 사람의 종이 됩니다. 다른 것에 가서는 명백하게알려주십니다. 영적인 생명이 왔다갔다 하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이 아무런 개념이 없이 살아가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말씀을듣되 순종하기 위해 듣는 것입니다. 순종하지 않을려고 하니까 안들립니다. 그런 목적으로드리는 예배를 다 알고 계십니다. 말씀듣는 것은 매일 들으면서 순종은 하지 않는 것. 한번 예배드릴 수록 계속 덩ㄱ 강퍅해지는 것입니다. 아무 일이 없다는 것. 똑같지 않다. 그런 사람이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멸시를 당하고 불행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예배를드려도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드리시기 바랍니다.

 
 

 
 

2.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

1)아버지의 사랑을 받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이 깨달아집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것을 축복으로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안믿어지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이 깨달아지는 사람. 느껴지고 만져지고, 보여지는 사람. 그렇게 되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 느낄 수 잇습니다.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받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만 받을 수 있습니다. 사랑을 모르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는 것입니다. 친밀한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의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산신령처럼 여기는 사람도 많습니다. 하나님이 내 안에 들어오심이 느껴지겠습니까? 하나님처럼 전지전능하신 분이 어디있겠습니까? 우리도 모르는 것을 하나님도 다 아십니다. 하나님을 속이려는 사람.  

 
 

요일 4:7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 이심이라

하나님이 계시는 것도 잘 느껴지지 않고, 하나님이 정말 나를 도와주시는 분이신가? 인격적인 관계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형식적인 종교생활로 갈 수 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이 느껴지지 않고 만져지지는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관계. 고아와 같은 신앙. 나홀로 알아서 하는 신앙. 내가 알아서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 하나님을 사랑하는자는 나와 함께 거처를 함께한다. (23) 고아는 아버지와 같이 함께할 거쳐가 없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지 집에 함께할 거쳐가 있습니다. 함께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이 옆집아저씨 따라갔다가 저기 갔다가 방황을 합니다.  

 
 

요일 4:20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보이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 보이는 형제와의 사랑. 잉꼬부부? 하나님을 사랑할 때 부부관계가 좋아집니다. 하나님으을 사랑하는 것이 없는 부부는 어려워질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니의 사랑이 없으면 인간관계의 어려움이 생깁니다. 형제를 사랑할 마음이 업습니다. 늘 남의 사랑을 강요하게됩니다. 남에게 늘 부담이 되고 짐을 주게 됩니다. 상처받고 짐이 되는 사람 - 그런 사람을 감당하기가 얼마나 어렵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모르는 사람이 계속 달라는 기도. 계속 섬기는 기도. 끊임없이 요구합니다. 하나님의사랑을 받고 사랑하는 사람 - 무엇인가 주고자 하고 나눠줍니다. 여유가 있습니다. 사랑이 있기 때문에 주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는 것입니다. 고아 - 잘 삐칩니다. 눈빛만 달라도 상처를 받습니다.형제를 사랑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형제가 왜 사랑이 되지 않습니까? 저교회, 저셀 이셀 아무리 가도 계속 문제를 일으킵니다. 왜 형제와의 관계가 어렵습니까? 형제. 죄인입니다. 나에게 완벽하게 대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없습니다. 형제를 사랑할 능력이 없는 사람. 그러나 사랑이 있어야 감당을 할 수가 있습니다. 이런 사람의 문제가 무엇입니까? 자기 죄가 용서를 받지 못햇기 때문입니다. 내죄가 용서받지 못한 사람이 남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형제르 사랑하지 못하는 것. 바리새인 - 말로는 얼마나 하나님을 사랑합니가? 그러나 세리,창기는 용납이 되지 않습니다. 주위의 사람이 판단이 되고 정죄가 됩니까? 내가 고쳐져야 됩니다. 그래야 내관계가 노예관계가 되지 않습니다.  

 
 

 
 

2)예수님이 사랑하심

예수님도 그 사람을 사랑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자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 그런 사람에게 예수님을 나타내십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하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자에게 주시는 약속 때문입니다. 말씀이 깨달아지괴 기도가 응답이 되고 음성이 들리는 것. 그 때 에수님 자신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기도가 열리고 주님의 음성이 들리고, 자신을 보여주십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지 않으시면 자기 혼자 찬양, 기도, 말씀듣다가 그냥 갑니다. 답답합니다. 예수닙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신앙을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나를 사랑하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신앙은 내 마음대로 되징 ㅏㄶ습니다. 성경은 읽을 수는 있지만 은혜가 되게 할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은헤를 받는 것.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 응답이 되는 것. 내 마음대로 되지 않습니다. 모든 일은 예수님의 주권아래에 있고, 예수님을 사랑하는자에게만 그것을 보여주십니다. 아무것도 볼 수없습니다. 에수님이 보여주셔야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이 그 동기를 보십니다. 한번의 예배를 드리더라도 에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만날 목적으로 오는 사람. 지루한 종교생활을 끊을 대답이 다 있습니다. 기도하는 사람의 중심이 다 잇습니다. 기도롤 준비하는 사람.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 마음이 없는 사람. 똑같은 일을 하면서 시간을 낭비합니다. 하나님 앞에 마음을 좋게가져야합니다. 개에게 던지지 않으십니다. 들리지 않습니다. 똑같은 예배를드려도 사랑하는 사람과 다 다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은 두가지 입니다. 하나님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의 방법 - 온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해서 주님을 사랑하라. 내가 이해가 되고, 내 중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떻게사랑하는지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우리의 영적인 능력이 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랑안에서 주님으로서의 권세를 회복하시기 바랍니다.

2009년 6월 12일 금요일

갈11_율법의 의와 믿음의의

1.일자: 2009. 6. 12

2.성경: 갈3;11-12

3.제목: 율법의 의와 믿음의 의

 
 

돌아올 수 없는 신앙의 문제. 죄를 얼마나 많이 졌는가보다 알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변화되고 새롭게 되는 기회를 갖기가 어렵습니다. 율법의 저주아래 처하기 때문에가장 불행한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에게 속한 사람일 수록 더욱 철저히 종교에 집착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 사람이 드리는 종교행위에는 하나가 빠져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임재가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없이 자기혼자 기도, 봉사, 찬송을 드린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할 때 아무리 열심히 종교 생활을 한다고 하더라도 그 인격은 바뀌지 않습니다. 자기의 율법의 행위에 의지하면서 살아갑니다. 생명이 있는 유정란. 똑같은 계란. 똑같은 모습의 계란. 무정란을 암탉이 품으면 썩어버립니다.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앙이라는 것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똑같은 씨의 모양을 가지고 있더라도 아무리 비, 비료를 주어도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율법주의는 경건의 모조품입니다. 경건의 모습이 나타납니다. 율법, 신앙의 모조품입니다. 오래되면 오래될 수록 부폐하고 썩어갑니다. 신앙을 오래할 수록 오만해지고, 더러워집니다. 10년을 한 만큼 그 속에 썩어집니다. 이런 심각한 율법주의의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율법으로 사는 의

내 행위를 통해서 하나님 앞에서 자기의 죄를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틀린말이 아닌것같지만 사람의 행위로는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사람 앞에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 앞에 바르고 진실되게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그렇게 해볼 때 죄를 없애는 능력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정말 율법을 지킬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게하는 역할을 하게됩니다 그런 사람이 양심이 바른 사람입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율법주의자들의 단점이 무엇입니까? 정말 율법을 지킬려고 하던 사람들. 그런데 율법을 하나님 앞에서 정말 지킬려고 했다면 포기했어야 합니니다. 정직하게 율법을 지키려고 한 사람들의 모습니다. 그러나 종교주의 유대주의의 모습은 정반대입니다. 율법을 지키면 지킬 수록 의로워졌습니다. 굉장히 의로워졌습니다. 일년만 이렇게 하면 지키면 지킬 수록 정말 의로워지는 것입니다. 30년짜리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바리새인 - 시장어귀에서 자랑하며 기도합니다. 하나님 앞에 의로워졌습니다. 하나님앞에 기도할 것이 많았습니다. 멀리떨어져 기도하는 세리.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서이다. 죄인을 깨닫는 것이 율법의 목적인데. 하나님의 뜻과 반대가 되었습니다. 왜그렇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의 중심을 다 보시지만, 사람들은 그들의 중심을 잘 보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인정하지 않지만, 사람은 외모를 봅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인정받을 기준으로 계속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데 유리한 쪽으로 자꾸 율법을 희석해서 지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진노는 더욱 깊어 가는 것입니다. 사람의 다수결로 우리가 의롭게되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으로 한 사람을 의롭게하는데는 하나님 한분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이 정죄하면 심판을 받게됩니다.

 
 

마 15:9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하시고

[NKJV]마 15:9

And in vain they worship Me, Teaching as doctrines the commandments of men.'"

 
 

남의 말은 잘 듣지 않으면서 자기의 의는 굉장히 강합니다. 혼적인 것이 강하기 때문에 영적인 것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굴복하지도 않고 굴복할 수도 없습니다. 혼이 더 강한 사람에게 굴복은 하더라도 영적인 것에는 굴복하지 않습니다. 혼이 강한 사람. 결국은 율법주의에 빠지게 됩니다. 세상적으로는 굉장히 칭찬을 할 것이 많습니다. 바리새인 - 철저하고, 책임감이 강하고, 의지가 강하고 능력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사람앞에서는 그것이 장점이 됩니다. 그러나 문제는 매사에 부지런, 책임감, 성실한 것. 혼적인 것이 발달하면서 성령의 소욕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세상대로 살면 자기 생각대로 살면 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를 원한다면 주님을 뜻대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끝까지 속으면서 살아갑니다.

혼적인 것이 발달하는 사람 - 남을 정죄하고 판단을 하면서 살아갑니다. 정죄와 판단. 자기의 의를 가지고 남을 판단하면서 살아갑니다. 영은 마귀에게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영에 속한 사람과 늘 부딪힙니다. 같은 말씀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원수가 됩니다. 아비와 아들이 원수가 되고, 늘 원수로 살아갑니다. 하나가 못됩니다. 이론과 관념으로 부딪힙니다. 율법주의만이 아닙니다. 영적전투의 원리입니다. 우리는 속지 말아야합니다. 혼적인 부분이 발달하는 사람은 이론, 관념, 논리, 생각이 발달하게 됩니다. 사단이 쥐어 틀고 있는 진지입니다. 자기의 이론이 깨어지기 전까지는 하나님의 영이 열리지 않습니다. 신앙생활은 영적인 생활이지 교훈과 도덕적인 생활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교회에 와서 좋은 교훈을 들으려고 옵니다. 좋은 말을 듣기 위해 신앙을 합니다. 이것이 종교인입니다. 사람앞에서 신앙을 하기 때문에 사람의 계명으로 바꾸어 신앙을 합니다. 완전히 신앙을 반대로 가르칩니다.

 
 

요즘 구제가 이슈입니다. 사람들이 좋아해서입니다. 똑같은 성경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기뻐하는 설교를 합니다. 사도바울이 자기도 이전에는 그렇게 햇습니다. 사람이 듣기에 아름다운 말. 논리적으로 수사학적으로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는 다고 하셧씁니다. 사람을 좋게하는 것이었다면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유대주의 갈라디아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음.

누구나 사람들에게 좋은 말을 듣고 싶어 합니다. 자기 생각을 짜내고 계속 좋은 지혜를 내는 것은 종교인으로 가는 지름길입니다. 영적인 것이 자꾸 막힙니다. 혼적인 부분이 약한 사람은 미련한 대접을 받습니다. 하는 것이 별로 없는 사람. 잘 못하는 사람. 저 사람이 어디에 쓰임을 받을 까? 그러나 하나님은 건축자의 버린돌이 모퉁이돌이 됩니다. 건축자들 - 종교인들. 교회 전문가. 하나님의 일의 전문가입니다. 쓸모없이 버릴만한 그 사람이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이 됩니다. 쓰레기라고 버린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버린 사람들. 율법을 지켜서는 잘 될 가망이 없으니까 쉽게 예수님께 나갑니다.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의인은 부르러 오지도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의를 찾는 길입니다. 의인이 되어서 주님을 만날려고 합니다 거꾸로 하려고 합니다. 스스로 의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율법주의로 됩니다. 진정한 죄인이 되는 것이 예수님을 잘 믿는 길입니다. 세상적인 자랑거리가 많은 수록 미지근한 신앙을 합니다. 자기의를 의지해서 신앙을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혼적인 지혜는 하나님의 사랑을 방해합니다. 새로운 신앙의 문을 여시기 전에 우리의 강한 혼적인 문을 여십니다. 우리의 영적인 세계를 열기위해 혼적인 문을 버려합니다. 미련해져야합니다. 자기 스타일좀 구기고 자존심을 버려야합니다. 절대깨어지지 않습니다. 강한 진지가 박혀있기 때문입니다.나의 성격이 아닙니다.기질의 차원이 아닙니다. 악한 사단의 진지가 있기 때문에 굴복되지 않는 것입니다.  

 
 

고전 1:20 지혜 있는 자가 어디 있느뇨 선비가 어디 있느뇨 이 세대에 변사가 어디 있느뇨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지혜를 미련케 하신 것이 아니뇨

고전 1:21 하나님의 지혜에 있어서는 이 세상이 자기 지혜로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고로 하나님께서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믿는 자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도다

저렇게하면서까지 그렇게 신앙하고 싶지 않다.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사람은 문벌있는 사람이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또 문벌이 있는 사람이라도 자기의 자랑거리가 파괴된 사람이 될때 사용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 자신을 자랑하는 것을 미워하십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으로 자랑하면 안됩니다.

 
 

고전 1:26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 있는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

고전 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고전 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고전 1:29 이는 아무 육체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

세상의 혼적으로 위대한 사람이 별로 없습니다. 세상의 약한 자를 택하는 것입니다. 없는 것을 택하신 이유. 자기의 거것으로 영광받으려는 사람들. 지혜있고 자랑거리가 있는 사람의 특징. 자기가 한 것처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사람을 쓸수가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큰 위대한 일들을 하기도합니다. 그러나 그사람은 자기 지혜로 해서 그 결과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일을 하면서 하나님의 진노를 쌓게됩니다. 하나님이 인정하시는 일. 상급이 주어지는 일.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는 일. 그러나 자기 능력, 자기 힘으로 하는 사람. 그런 일을 하고나면 하나님의 임재가 사라지게됩니다. 혼적인 지혜와 지식을 다 버리고 일해야합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 무슨 능력을 나타냅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는 사람. 그렇게까지 해서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 그러나 억지로 하시지 않습니다. 택한 사람은 항상 소수입니다 믿음의 조상입니다. 의가 있고 자격이 있어 그런 것이 아닙니다. 정말 의지할 것이 없는 사람. 아브라함. 형은 먼저 죽고, 자식도 없고, 우상도 없고. 된 것이 없는 사람. 그래서 문이 열려씃ㅂ니다. 모세-그냥 그대로 쓰시지 않으셨습니다. 말을 할 수도 없는자입니다. 모세가 할 수 없다고 고백할 때 하나님이 역사하십니다. 내 힝으로는 꺽을 수 없는 강한 진지들. 하나님 

 
 

 
 

2.믿음으로 사는 의

믿음으로만 우리의 인생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기도의 행위보다 한가지 내 죄를 회개하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기도를 율법의 행위로 하기때문에. 한 번의 기도라도 기도를 일로써하면 안됩니다.

다시 어려워졌다가 나오는 사람. 주일날 나오는 행위를 통해서 그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죄를 끊을 수 있는 것은 회개뿐입니다. 회개를 하면 반복되지 않습니다. 아무일이 없었다는 듯이 또 나왔다가 또 있다가 또 어려워집니다. 종교는 절대로 회개가 되지 않습니다. 율법은 믿음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죄가운데 잇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율법은 믿음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율법으로 뭔가를 행하려고 하는 사람은 평생을 율법으로 살다가 율법으로 마치게 됩니다. 성령으로 시작해서 율법주의로 가게되는 것. 믿음이 없어지게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데 절대로 율법주의로 가지 않습니다. 율법은 힘들고 어려운데 왜 율법을 하겠습니까?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율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율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자기 아들 예수그리스도가 모든 문제를 해결하였다는 것을 믿는 것이 믿음입니다. 이 공로를 믿는 믿음이 없기에 아직 율법에 남아있습니다.  

 
 

롬 8: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롬 8:4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율법은 이룰 수 없습니다. 육신때문입니다. 육신대로 행하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면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지게 하셧씁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신의 요구를 이루지 않게 됩니다. 열심히 살려는 것은 좋은 마음입니다. 그러나 그것때문에 속을 수 있습니다. 세리와 창기는 오히려 율법을 지킬 수 없기에 자기가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율법주의자들. -바르게 살려고 하기 때무에 자기가 죄인인것을 일지 못합니다. 영적으로 꽉막힌 사람이 있습니다. 열심히 신앙을 하고, 종교를 잘지키는데 문제가 많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기에 착하게 살려고 해기 때문에

사람앞에 살면 결코 .

죄가 없는 사라일수록. 착하게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성령의 역사. 회개이 역사. 변화의 역사는 없는 것입니다. 바르게 양심대로 살면 달라집니다. 내가 나도 싦은데.  선한 사람일수록 더 예수를 믿지 아으려고 합닏. 정말 양심껏 살력 하면 자기 죄가 보이게 됩니다. 그런 사람일 수록, 착하게 살던 사람.

 
 

롬 7:18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롬 7:19 내가 원하는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니라

죄가 우리를 속입니다. 양심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교통이 없습니다.

 
 

믿음의 의 - 나는 죄인이다. 예수님의 공로에 의지합니다.

율법의 의 - 자기의 직분과 봉사.

 
 

믿음. 십자가에 자기를 죽이는 죽임이 필요합니다. 아직도 사랑있는 사람. 자기 감정하나 부인할 수잇습니다. 포기하면 새인생을 주십니다. 부활의 새로운 신앙을주십니다. 이것을 믿어야합니다. 약속을믿고 나가면 주십니다.  

 
 

 
 

2009년 6월 6일 토요일

090607_고아

1.일자: 2009. 6. 7

2.성경: 요14:18-20

3.제목: 고아처럼 살지 말고 자녀답게 살라

4.찬송: 84장

 
 

고아와 같은 인생. 영적인 고아와 같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 하나님의 도움을 받고 사랑을 느끼는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는 반면에 영적 고아와 같은 인생.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 것처럼 한쪽 구석에서 스스로 고아와 같은 인생을 살아감. 고아 - 부모가 실제로 안계신 사람., 부모가 살아있지만 떠났거나 잃어버린 사람. 영적 고아가 된 사람도 있지만. 자기가 방탕한 삶을 살아서 아버지가 없는 것같이 살아가는 생고아와 같은 인생. 말로는 하나님을 믿는 다고 하지만 말로는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이라고 하지만 하나님, 성경에 대해 아무런 능력을 못받는 사람. 지금도 하나님이 살아가지만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전혀 예배, 말씀, 찬양을 통해 아무런 감동을 느끼지 못하는 신앙. 정말 아버지를 나의 아버지로 모시고 자녀와 같은 신앙을 하는 사람인지. 누구든지 잘못된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살아있는 자녀로서의 신앙. 하나님과의 관계성. 세가지

 
 

1.아버지의 도움을 받아라(18)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것이 부끄러운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말하는 것이 부담스러운가? 불편한 관계이거나 기도하지 못하는 관계. 관계가 껄그럽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부모의 도움을 받을수 없는 고아. 힘들어도 혼자 감당해야합니다. 어느 누구의 도움도 청할 수 없는 것입니다. 내가 알아서 모든 것을 처리하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무런 상관이 없이. 자기가 알아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부모없는 고아와 같은 인생이 아닙니다. 세상 끝날까지 영원이 성령님과 함께하는 신앙입니다.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느껴지지 않는다고 모든 것을 내가 알아서 신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눈에 보이지 않아도 믿음으로 살아야하는 것입니다 그런 인간적인 종교생활을 하지 말아야합니다. 나를 도와주기 위해 오셨습니다. 도움을 다 들어주신다고 하신것입니다 언제든지 성령을 의지해서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마 7:9 너희 중에 누가 아들이 떡을 달라 하면 돌을 주며

마 7:10 생선을 달라 하면 뱀을 줄 사람이 있겠느냐

마 7:11 너희가 악한 자라도 좋은 것으로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좋은 것으로 주시지 않겠느냐

세상의 아버지도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가장 좋은 성령. 십자가를 내어주시기까지 하는 것이 성령님입니다. 자기가 아무리 죽게되었어도 불평, 원망하기는 하지만 기도는 하지 않습니다. 묵은 고목이 되었어도 아버지께 간구하거나 기도하지는 않습니다. 나혼자 열심히 하는 자수성가식의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방법대로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한대로 하기 때문에 자기가 혼자 알아서 합니다. 거져 성실 하나로 헌신하나로 몸으로 때우는 식으로 자기가 알아서 열심히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 말도 듣지 않습니다. 바리새인도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알지 못하고 열심히 신앙을 하는 사람들. 바리새인들, 자기 공로가 가득한 사람. 열심히 하지 않는 사람보다 자기 혼자 열심히 일하는 사람. 성경은 이런 사람을 경기하는자가 아무리 열심히 해도 감독과 고치의 말은 듣지 않고 자기 혼자 열심히 일하면 경기에 나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것이 신앙입니다. 예수가 머리가 되는 교회. 하나님은 안중에도 업고 자기 식대로 자기마음대로 하는 신앙을 고아신앙이라고 합니다 인격의 문제를 낳습니다 독선, 아집, 끝까지 자기 의를 가지고 살아감. 완고한 신앙을 하게됩니다. 하나님이 자기를 도와줄 분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욱 신뢰합니다. 말씀대로 순종하면 하나님으로 인해 더욱 멸망당할 것같다고 합니다.

광풍이 부는 곳. 그때 예수님이 물위로 걸어오심. 제자들을 위해 다 보고 계심. 광풍위의 제자들. 두려워서 떠는 모습을 홀로 내버려두시지 않으십니다. 그 제자들을 도와주십니다. 지금도 일어나는 모든 역경, 환란 풍파를 이길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믿는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시 23:4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실제로 믿는 신앙을 해야합니다. 실제로 믿는 신앙을 해야합니다. 예배를 드리는 태도와 자세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인식을 바꿔야합니다. 믿는 만큼 하나님이 실제적으로 역사하실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2.아버지와 관계성을 가지라(19)

고아는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 아버지를 내가 존경을 하면 내가 아버지의 사랑을 느끼기도 하고, 순종하기도하고 인격적인 관계성을 맺습니다. 아버지가 말을 해도 듣지도 않습니다. 순종하지 않습니다. 이런 관계가 나쁜관계입니다.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의 모델을 보여주셨습니다. 에수님 늘 아버지께가서 아버지와 교제를 하였습니다. 보여주신대로 살지 내가 임의대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해도, 뜻을 알려줘도 자기 나름대로 사는 것은 고아신앙입니다. 십자가에 죽으시는 사건. 성령을 다시 보내심. 모든 것을 알고 보내심. 교회를 다녀도 성령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 다시는 나를 보지 못하리라. 너희는 나를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그 이유가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는 것. 예수님이 십자가에 돌아가신 것 까지만 믿습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예수님 만을 믿는 것ㅇ빈디ㅏ. 내가 죽은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우리와 함께 계신 예수님. 우리는 죽은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닏. 살아계셔서 지금도 나에게 말씀하시는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보이는 것만을 믿는 신앙.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 신앙. 병들고 힘들어도 하지 못하는 신앙. 내가 살았기 때문에 너희는 고아가 아니다. 고아. 하나님의 말씀이다. 고아는 안들리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리기도 하고, 예물도 드립닏. 고아의 입장에서 섬기지 살아계신 예수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내 찬양을 드리시든지 말든지, 하나님과 아무런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는 않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말씀을 예배를 통해 듣는 것입니다. 인생이 새롭게되는 역사를 이루는 것입니다. 종교의 형식으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회개하고, 병이 났다? 그것을 이상이 여깁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자기 아버지와 관계성이 없는 사람. 친밀하게 살아가는 사람. 그것이 이상하게 여기는 사람. 아버지가 저럴 수도 있는가? 종교인들. 회개, 부흥이 되면 그것을 이상하게 여깁니다. 자기들끼리 종교인들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고아와 같은 신앙. 하나님의 뜻에 매여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보통때는 하나님을 위해 그렇게 헌신하면서 하나님의 뜻에는 순종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큰 일꾼으로 집사, 장로로 섬기면서도 하나님을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업습ㄴ디ㅏ. 하나님과 관계성이 없는 신앙. 내가 누구의 자녀인가를 아셔야 합니다. 하나님의 자녀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8:44-마귀의 자녀. 세상의 자녀도 아버지와는 친밀한 관계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아버지와 함께하고, 세상에 속한 어둠의 자녀들. 하나님의 자녀라고 하면서 하나님이 그보다 못한 관계성을 가지면서. 조금 어려운 문제가 있어도 들은대로 다 순종합니다. 점쟁이들이 하는 말은 철서같이 믿습니다 좀 더 큰 무당, 점쟁이들의 말에는 절대 순종을 합니다. 내가 무엇에 순종하는 가에 따라 내가 누구의 자녀인가를 알수 있습니다.

 
 

요 3:20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요 3:21 진리를 좇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

세상친구, 세상의 스승의 말을 들으면서 살아가는가? 아무리 몸은 교회에 있어도 그사람이 어디에 속한 사람인지 알수있습니다. 평소에는 잘어울리다가도 인생의 중요한 문제에서는 세상의 말을 듣는 사람.

내가 어려울 때 어디에 가서 누구와 교제를 하는가 알 수 잇씁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남아야 합니다.  

 
 

 
 

3.아버지를 알아가라(20)

세상적인 많은 지식을 가져도 하나님을 아는 영적인 지식이 없는 사람. 영적인 세계에 대한 지식이 생깁니다. 말씀으로 나타납니다. 말씀으로 회개하고 능력이 나타났다고 하는데 아무 능력이 없습니다. 세상 모든 죄를 끊고 살아가게됩니다. 지식이 없는 아이도, 죄악된 인생을 살던 사람도 회개하고 눈물을 흘리고 변화를 받아서 새롭게 살아갑니다. 아버지를 다시 찾고 고아로 다시 살게된 증거입니다. 교회에서 자라고 놀고 있으면서. 말씀하나 듣지 못하면서 눈물을 흘리고 회개를 하게 됩니다. 자기 신념과 교리와 생각을 믿는 사람. 자녀가 아니면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영적 지식-성령이 오실 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내 힘으로는 성령의 뜻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내가 열심히 하는 것은 한계가있습니다. 겸손한자, 순종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이 하게하시는 신앙을 하게될 때입니다. 성령의 일을 받지 못합니다.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성령을 소멸하는 죄를 짓게 됩니다. 성령을 떠나서 성경말씀을 깨닫게 됩니다.  

 
 

롬 8:16 성령이 친히 우리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 것을 증거하시나니

성령이 임하실 때 우리 영으로 깨닫게 됩니다. 영으로 더불어 우리가 자녀인 것을 듣게 됩니다. 말씀을 영으로 들어야 자녀로서의 신분이 회복되게 됩니다. 성령을 초청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회개하기만 하면 하나님과의 말씀이 회복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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