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고린도후서 12장 7-10절
제목: 주 안에서 강하라
아기가 태어나면 아이가 더 잘자라가기를 원합니다. 다른 아이보다 잘하는 것이 있으면 혹시 영재가 아닐까? 강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강한 것을 요구합니다. 강하라. 그러나 성경의 강하라는 세상의 개념과 조금 다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만드셨습니다. 예수님 -
1.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시는 하나님(7-9)
육체의 가시-상징적인 표현. 육신의 질병을 가지고 있었다. 세번이나 하나님앞에 기도했습니다. 간절히 세번이나 기도했습니다. 바울에게 그의 기도를 응답해주신 것이 아니라. 바울의 기도를 응답해주시지 않고 거절하셨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사도바울에게 하나님은 응답해주시지 않았씁니다. 능력이 있는 사람. 기도하는데로 다 들어주시는 것이 능력인데. 성령의 능력이 충만한 사람. 그런데 왜 자기의 질병은 치유되지 않았을까? 바울의 어떤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닌가? 아무 문제가 없는 것이 은혜? 원하는 것이 다 이루어지는 것이 좋은 신앙?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 때문에 만족하지 못하고, 어려움은 은혜가 아니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은 육체의 가시를 허락하신다고 하셧씁니다.
1) 자만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
3층하늘을 체험함. 대기-첫째하늘, 우주-둘째 하늘, 천국-셋째하늘. 자기의 간증을 하고 잇습니다. 계시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육체의 가시를 주심. 사도 바울을 위해 육체의 가시를 주심. 고난이 없는 사람. 무엇이든지 잘 이루어지는 사람이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는 우리의 믿음이 세상을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세상에 누리는 것보다 하나님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 많은 사람입니다. 예)다윗 - 광야의 고난의 시기. 항상 충만한 시기를 보냈습니다. 광야의 기간. 훈련의 기간이 가장 안전한 기간이었습니다. 가장 강했을 때. 부와 권력과 능력을 취하고 있을 때 다윗의 인생은 가장 위험한 시기를 보내는 것입니다. 가장 안전하고 많은 것을 소유한다고 할 때 그때가 가장 위험한 시간입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누릴 것이 많이 있지만, 그것을 내것으로 누리지 않고, 누릴 수 잇는 사람을 누리지 않을 수 잇는 사람. 그사람이 가장 축복되고 강한 사람입니다. 다윗을
2) 하나님의 은혜가 족하기 때문에
우리들의 삶속의 은혜는 우리에게 족합닏. 인생의 고난과 어려움. 우리에게는 만족할 수 없는 어려움. 하나님이 우리인생을 사용하시는데는 불가능한 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원하는데로 잘 되지 않고. 우리 인생이 그렇게 술술 풀리지 않는다 할 지라도. 어떤 상황에서든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그러나 내 생각이 강한 사람.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 우리편에서는 걸림이 됩니다. 나도 모르게 신앙에대한 회의가 찾아옵니다. 상처가 되기도 합니다. 하나님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사무엘하 22:27
깨끗한 자에게는 주의 깨끗하심을 보이시며 사특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리심을 보이시리이다
to the pure you show yourself pure, but to the crooked you show yourself shrewd
하나님을 불신앙의 모습으로 바라보면 우리에게 그렇게 나타나십니다. 바울과 하나님과의 관계에 문제가 있어서 그런것이 아닙니다.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사도 바울과 함께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소망 - 주님이 함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한다면, 그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선하게 바꾸실 만한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데로 다 소유했는데, 하나님이 나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면 약한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었지만 만족이 없을 때. 내가 살아야될 소망을 잃어버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만약 하나님의 은혜를 잃어버리고서 하나님을 잃어버리면 우리의 안전을 보장할 수 없습니다. 비록 우리에게 기도가 응답되지 않고 가시와 같은 어려움이 지속된다고 할 지라도, 주님이 나의 기도를 들으시는 구나, 나와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느끼는 사람은 은혜안에 있는 사람입니다. 세상에 무엇을 소유하는 것에 따라 만족을 얻는 사람. 우리의 존재는 항상 특별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의 인생은 주님안에서 특별한 것입니다.
3) 약한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해지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이 가장 강하게 나타나는 교회? 세상의 권세있는 사람들이 모인 교회가 아닙니다. 세상의 철학. 세상의 세력이 발붙이지 못하는 교회,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교회. 세상의 어떤 철학이 발붙이지 못하는 교회. 하나님의 능력과 권세가 나타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나타나지 못합니다. 예수의 능력.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사람으로는 저런 것이 불가능할텐데. 세상을 사랑하면서 불안하고 두렵습니다. 세상을 잃어벌릴까두려워합니다. 하나님을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쫓아간다면 세상이 우리들에게 굴복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이 우리를 따라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약해지는데서 하나님의 능력이 온전하게 나타납니다. 약할 때 강함이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능력은 우리의 강한데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부족함 가운데 능력이 없어 하나님앞에서 약해지기로 선택할 때 주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대부분의 시간을 우리의 약점을 감추기 위해 노력합닏. 나를 강하기 위한 노력입니다. 영적으로는 약한 것을 자랑하는 것이 나의 강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가 강하게 되는 비결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비결입니다.
2. 약한 바울을 강하게 하시는 능력의 하나님(10)
1) 약한 것을 기뻐함
나를 위해 살고자 하면 고난을 피할 수있습니다. 예수를 위해 스스로 선택한 어려움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기뻐하신다면 내가 약해질 수 있다는 인생관을 가졌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된느 것을 보면 기뻐하는 것이 힘이듭니다. 다른 사람보다 상대적으로 잘되는 것을 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살게될 때 기꺼이 그것을 기뻐할 수 있는 가치관을 가졌습니다. 중요한 사람 Something 보다는 하나님의 인생의 목적. 형편에 관계없이 하나님을 위해 약한 것도 자랑할 수 있는 가지관이 되었습니다. 강하면 강할 수록 하나님이 들어나지 않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님의 복음에 헌신된 사람입니다. 예수님께로 이끄는 사람. 내가 흠이 없고 능력이 많아야겠지만. 내가 부족함 있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2) 그리스도를 위해 사는 인생관을 가짐
빌 3:7,8
우리의 옛사람은 나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말합니다. 우리의 옛사람. 죽은 사람이 거리를 활보한다는 것을 상상해 보십시오. 사람들과 함께. 나의 의때문에 체면때문에 너무나 괴롭습니다. 베드로 - 예수를 위해 죽고자 하는 열심이 있었습니다. 어쩔 수없이 부인했습니다. 베드로가 어떻게 살것인가? 예언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 18, 21, 22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남이 잘되는 것을 시기합니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감사가 없어지고, 불평이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을 좇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믿고 있는 그대로, 단순히 예수를 위해서 말씀대로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사람입니다. 이제는 예수를 위해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그런 삶을 도전하기 위해 믿음으로 싸웠던 인생입니다. 내가 너무 많은 은혜를 받아서 예수를 위해 살게될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그의 인생의 고백. 그의 인생의 전체였습니다.
로마서 14:8
우리가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나니 그러므로 사나 죽으나 우리가 주의 것이로라
If we live, we live to the Lord; and if we die, we die to the Lord. So, whether we live or die, we belong to the Lord.
이것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안에서 강하라. 너무나 약하고 연약한 사람입니다. 이것을 해결하기위해 신앙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가 약하다 할지라도 예수님은 강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약하다 할지라도 예수를 위해 세상에 나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능력은 우리에게서 나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능력이 잇다는 것을 믿습니까? 예수님만을 위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고백이 여러분의 고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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