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3월 28일 토요일

090329_길이요진리,생명이신예수그리스도

1.일자: 2009. 3. 29

2.성경: 요14:4-6

3.제목: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

4.찬송: 93장

 
 

어떻게 살까? 하나님이 우리 인간을 창조하신대로 살때 가장 바르고 온전한 인생을 살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제각각 어떻게 하면 살수 있는지 그 원리를 내셨습니다. 소-풀, 사자-육식을 먹도록 하셨습니다. 원리를 거스려 살면 이상한 증세가 나타나는 것ㅇ비니다. 사자가 풀을 머고 산다면 그 생명이 오래가지 못할 것입니다 인간-밥만 먹고 살면 된다면 별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말씀을 먹고 살아가는 존재로 지음받았습니다.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육신의 밥만 먹어서는 안됩니다. 영육이 바르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음식이 아무리 값지고 좋은 음식을 먹어도, 영혼의 양식을 먹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영혼의 양식입니다. 아무리 육신의 쾌락을 즐기고 육신은 건강해도 영혼은 망하게 됩니다. 영이 죽은 인생은 육적인 동물같은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평생을 육신의 만족을 위해 살다가 동물같은 인생을 살다가 죽습니다. 죄와 허물로 죽었다 - 육체가 아니라 영혼이 죽었다는 것을 뜻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위해서 죽은 영혼을 살리기 위해 생명의 양식. 생명의 떡으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생명의 떡으로 이세상에 오셨습니다.

 
 

요 6:3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왜 교회에서도 불평, 짜증. 기쁨이 없이 살아갑니까? 영이 죽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못듣는 사람이 그럽니다. 영이 죽었기 때문에 육신으로만 살아갑니다. 말씀을 못받으면 성령이 역사하는 교회와 목회자를 대적하게 됩니다. 평생을 죄만 짓다가 살아가는 것입니다. 인생이 무엇을 하며 무엇을 먹고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나? 살았다하나 죽은 인생이 아니라 분명히 살아가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1.길을 모르는 사람(4-5)

 
 

내가 가는 길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도마 - 어디서와서 어디로 가는지 모릅니다. 그냥 살아지는 것입니다 육신이 이끄는대로 사는 것입니다. 놀것이 있으면 놀기위해 살고, 잘곳이 있으면 자고. 어디로 가는지 그 길을 모르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우리와 다른 것 - 자기 자신이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아는 인생을 사셨습니다. 그것이 진리의 길이고 승리의 길입니다. 예수안에 있으면 우리가 가는 길을 예견된 길로 가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삶을 사는지 알게됩니다. 예수님이 바로 그런 인생을 사셨습니다. 왜 그런 바리새인들이 공격을 하는지. 예견된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내가 가야 될 길이 보입니다. 내가 해야할 일이 보입닏. 나중에 나에게 주어진 인생이 보이는 인생. 먹을 거싱 있다고 먹고, 죄를 지을 것이 잇다고 죄를 짓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의 목표는 이세상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세상은 어려움에 걸려넘어집니다 그러나 예견된 인생을 살아가는 인생 - 넘어지지 않습지다.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살아갑니다.

도마 - 의심이 많은 사람. 부활의 주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 논리적, 이해가 되지 않으면 믿지 않습니다. 천국에 대한 말씀을 그렇게 많이 들어도 듣지 못하는 인생을 살았습니다. 30년동안 말씀을 들어도 전혀 영적인 것을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입니다. 아무리 들어도 성령을 거부하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까? 성령을 받기 전까지는 거스릴 수가 업습니다. 3년간 봐도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지 모릅니다.

이런 인생 - 어쩔수없이 보이는 것을 따라 살아갑니다. 죽음 앞에서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바닷가의 모래성과같은 것입니다. 하나 마나한 인생이 됩니다. 사망과 심판의 파도가 오면 다 없어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인생이 아니라 모래성이 있는 인생. 말씀을 그렇게 많이 듣고도 행하지 않는 사람은 창수가 나면 바로 없어집니다.

도마의 질문이 바로 이것입니다. 없어질 인생.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인생이 되기 위해. 우리가 가야할 궁극적인 인생이 되어야합니다.

우리가 왜 교회에나오며, 왜 교회 의자에 앉아야 하는가? 왜 신앙을 하면서 어렵고 고난이 있지만 그 길을 알면 내가 가야할 길을 알고 가야합니다.

자리를 채우면서 교회를 나올 필요는 없습니다. 차라리 나지 않았을 것이 더 낫았다. 유다를 보고 이렇게 하셨습니다.

신앙의 목표가 분명히 해야합니다. 목표가 분명하면 낭비하지 않는 인생을 살아갑니다. 일년2년을 낭비하는 인생을 살게됩니다. 예수님을 믿으려면 믿고, 차든지 덥든지 해야합니다. 미지근한 인생을 살필요는 없습니다. 왜 나만 안변화됩니까? 왜 나만 반대편으로 갑니까? 2009년이 벌써 3월이 다갔습니다. 새롭게 살기를 원하신다면 새롭게 살게 될 것입니다.

 
 

 
 

2.하나님께로 가는 길

 
 

3년을 제자로 살았으면서 너무 한심한 모습을 살았습니다. 계속 말씀을 들으면서 변화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너무 답답합니다.

 
 

1)길

 
 

길은 목적지로 가는 통로입니다. 무슨길? - 하나님께로 가는 길입니다 예수님께로 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은 길을 찾아 온 인생을 낭비합니다. 인생은 이렇게 사는 것이다. 어느 누구도 다 다른 길을 이야기 합니다. 길이 다 다릅니다. 이말은 어느것도 바른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다 다릅니다. 다 길에대해 이야기했지, 자기 자신이 길이라고 이야기 한 사람은 업습니다. 이세상이 오직 내가 곧 길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 만이 그렇게 이야기 하실 수 있습니다. 십자가를 통해 예수님께로 가는 길을 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길을 통해서도 하나님께로 가는 영생의 길이 업습니다.

 
 

행 4:12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천국에 올수 있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 인생이 가야할 길. 이렇게 저렇게 가는 길. 예수님을 따라가는 길 밖에 없습니다. 이세상에 많은 업적, 지식, 공로를 쌓아야 길을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것은 못해도 예수님을 믿으면 성공한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2)진리

 
 

불의가 없는 것. 하나님의 의 외에는. 진리가 없는 것은 하나님 나라가 아닙니다. 진리가 어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디에도 진실, 진리는 없습니다. 이세상이 타락하고 불의하기에 진리는 없습니다. 이세상에 유일하게 죄가없으신 예수님이 진리가 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그자체입니다. 하나님의 절대적인 의가 무엇이고  

 
 

요 1:17 율법은 모세로 말미암아 주신 것이요 은혜와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온 것이라

 율법과 지식은 우리를 굴복합니다. 모든 자유를 구속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의 모든 지식은 그 지식에 얽매이게 합니다 지식과 율법은 우리를 구속합니다.

어떤 음식이 독성이 있다. 모르는 사람은 자유합니다. 그러난 지식과 율법이 있으면 부자유합니다. 아는 것이 병이됩니다. 결혼은 이렇게 해야한다는 자기의 지식이 있기에 어렵습니다. 내가 진리라고 믿는 것이 나를 얼마나 구속하는 지 알아야합니다. 사단에게 거짓으로 매이게 됩니다. 참된 진리는 거짓과 어둠에서 나를 자유하게 합니다. 거짓된 것에서 나를 자유하게 합니다. 자기의 주관이 있습닏. 불문율이 있기 때무에 자유함이없습니다. 판단하고 대적하는 일밖에 없습니다. 이땅에 오셔서 저주와 결박에서 십자가로 속량하셧습니다. 진리를 알면 자유하게 됩니다. 거짓된 사상이 있으니까 부자유합니다.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사마리아여인 - 모든 사람에게 결박. 예수님을 만나고 결박이 끊어졌습니다. 무엇이 그렇게 했습니까? 진리가 들어오면 나를 자유하게 합니다. 거짓이 떠나면 나를 자유하게 합니다.

막달라 마리아 - 일곱귀신이 들었던 마리아. 결박에서 자유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그 사람이 자유함을 받습니다.

삭개오 - 거짓된 돈이 자기 인생을 묶여버렷습니다. 돈의 세력이 다 끊어져서 모든 돈의 세력에서 자유함을 얻는 것입니다.

세상에 묶인 결박 - 우리 영혼을 압박해서 죽게 만들어 버립니다. 어둡게 짓누르던 결박이 자유함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야 자유함을 얻습니다.

 
 

 
 

3)생명

 
 

모든 생명은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요 1:4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만이 우리에게 필요한 생명이 됩니다. 사람들 속에는 어둠이 자리잡고 잇기 때문에 생명이 자라나지 못합니다. 예수의 생명이 들어와야 우리의 어둠이 떠나고 생명이 살아납니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영혼은 죽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한다는 것도 모르고, 깨닫지 못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믿으면 우리는 살아납니다.  

 
 

요 5: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이 어떻게 나에게 들어오는가? 듣는 자는 살아납니다. 생명이 살아나는 방법 - 영으로 들으면 살아납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나갈 때 영으로 생명으로 살아납니다. 의자에 앉아 있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습니까? 예수 안에는 생명의 및이 있습니다. 말씀을 들을 때 살아납니다. 살아나는 자는 삶이 달라집니다. 태도, 자세가 달라 집니다. 말씀을 듣고 살지 못하는 사람은 계속 죽는 삶을 살아갑니다. 이땅에 사는 육체의 생명. 다 흙이 됩니다. 그러나 육신이 죽는 순간 - 내 영혼은 두 길로 나누어 집니다. 예수를 믿고 생명을 얻는 길로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일을 많이 해도 육체가 죽을 때 생명이 없으면 사망의 불못으로 떨어집니다. 믿지 않는 사람은 이것을 듣기 싫어합니다. 바로 그사람이 들어야합니다. 천국과 지옥에 대해서 말을 잘 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아니면 그것을 알려줄 어떤 곳도 없습니다.

아무리 설교를 만힝 들어도 예수의 생명이 없으면 영원한 불심판에 떨어집니다. 예배를 적당이 들을 수가 없습니다. 생명이 없기에 말씀이 들리지 않는 것입니다. 생각할수록 그것은 심각한 것입니다. 왜 믿지 않는 자가 그런 형벌을 받습니까? 죄가 우리를 심판.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는 죄. 말씀을 믿지 못하는 죄가 어떤 죄보다 심각한 죄입니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님을 믿으면 용서를 받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지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 에수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는 다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사람. 생명이 되는 사람이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교회를 다닌다고 그리스도인이라고 말씀하지 않스빈다. 직분, 교회다닌 것이 그리스도인이 아닙니다. 예수의 영을 가진사람만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의 영을 가진 사람은 한 말, 한 뜻, 같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이 얼마나 많습니다. 한 영으로 가져서 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해도 예수를 믿지 못하는 사람은 실패한 인생입니다. 왜냐하면 육신의 삶은 성공해도 영을 구원하는 인생은 실패한 것입니다. 다른 것에는 실패했더라도 영혼을 구원하는 인생에는 성공한 사람이 진정한 성공한 사람입니다.

 
 

하루를 살아도 나의 인생이 어떻게 될 것이라는 분명한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자기의 인생을 예견하는 인생을 살아야합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아가는 인생. 자기 인생을 바라보는 믿음이 없는 것이빈다. 영원히 내가 가야할 길의 모범이 되어야합니다.

반드시 내안에 가져야할 생명의 원천으로 신앙의 모델을 삼아야합니다.

 
 

 
 

 
 

2009년 3월 27일 금요일

갈7_어리석은자가되지말라

1.일자: 2009. 3. 27

2.성경: 갈3:1-2

3.제목: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라

 
 

사단의 꾀임에 빠져버리면 나도 나를 제어할 수 없습니다. 눈과 마음의 생각을 바꿔버립니다. 내 마음의 영적 상태를 그대로 나타내는 도구가 나의 눈입니다. 눈은 마음의 등불입니다. 내 눈이 무엇을 선하게 보고 어떤 것을 악하게 보는 가? 영적 시력. 나의 영적인 상태입니다. 하나님에게 나온 것을 선하게 보고, 사단에게 나온 것을 악하게 보는 것.

갈라디아교회 - 너무 어리석게 보는 것입니다. 자기가 양육하고 세운 교회의 성도들이 너무 어리석어 보이는 것입니다.

 
 

1.어리석은 자의 눈(1)

1)하나님의 은혜를 잊어버림

 
 

내가 얼마나 많이 받고, 내가 나의 된 것이 어떤 은혜를 받았는가를 생각해봐야합니다. 내가 당연히 처음부터 그런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개구리가 처음부터 개구리가 아닙니다.

직장이 없었을 때 얼마나 부럽습니까? 직장이 어렵다 힘들다. 그것은 배부른 소리입니다. 무슨 일을 시켜도 다하는

것같습니다. 한두달은 너무 은혜가 넘칩니다. 나도 일을 할 수 있다니.. 그러나 한두달이 가고 시간이 지나면 불평거리가 보이고, 없는 것이 보입니다. 없는 것들을 봅니다.

직장을 다니겠느니 못다니겠느니 그런 말들을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가 그렇습니다. 은혜를 받으면 얼마나 오래갑니까? 

 
 

계 2:4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계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처음사랑이 식어졌다. 뜨거운 열정이 식어졌다. 감격적인 사랑이 식어졌다.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라. 회개치 안않으면 너희 자리를 옮기리라. 주님의 첫사랑이 다 있습니다. 모두 첫사라잉 있습니다.

세상사람과 똑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 오기전에 내가 어떤 삶을 죄가운데 방황하며 살았는지 물어봐야합니다. 그런 나를 동역자를 통해 그 바뀔 수 없는 나를 변화시켰는가를 생각해 봐야합니다. 얼마나 큰 감격이 있었습니까? 그 감격을 지금 어떤 모습으로 유지하고 있는가? 1,2,3년이 되어 무엇이 그 은혜를 사그러지게 하였는가? 어디서 부터 내가 떨어지고 빗나가게 되었는가? 그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우리의 은혜를 소멸하게 하는 것은 죄입니다. 옛죄를 집어 먹게 하기 때문에 은혜를 소멸하게 되는 것입니ㅏㄷ.

첫사랑의 감격은 한 번으로 끝나는 것이아닙니다. 혼인잔치가 아직 되지않았습니다 결혼하기 전의 데이트. 연애시절은 사랑이 식지 않는 것입니다. 연애시절. 주님과의 사랑이 식어지면 안됩니다. 잃어버린 데서 다시 올라오는 한해가 되시기 바랍니다.  

 
 

 
 

2)사단의 꾀임에 빠짐

 
 

누가 너희를 꾀더냐? 너희가 그런 사람이 아니었는데? 꾀임에 빠졌다는 것입니다. 유대주의자. 율법주의자가 갈교인들을 꾀이는 것입니다. 꾀임에 빠지면 다른 눈을 받게 됩니다. 신앙을 시작하면 눈이 달라집니다. 너무 사랑이 되고 기쁘고 감격이 됩니다. 그러나 꾀임에 빠지면 눈이 바뀝니다.

신앙을 최고로 잘하는 사람은 신앙을 잘 유지하는 자입니다. 한 때 기라성 같은 신앙. 수두룩 합니다. 교회안에서 잠자는 자들. 한때는 다 기라성 같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런 자들은 주님앞에 실패자들입니다.

하와 - 꾀임. 하나님이 주신 눈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리고 뱀이 주는 눈을 가졌습니다. 사단의 눈을 가졌습니다. 마귀는 틈이 없으면 들어오지 않습니다. 내 마음을 항상 청결하게 유지해야합니다.

 
 

엡 4:27 마귀로 틈을 타지 못하게 하라

낚시꾼들은 고기가 잘 모이는 곳에 갑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미끼를 던져도 물지않는 고기가 있습니다. 남은자들이 있습니다. 끝까지 남아 있는 물고기들. 미끼에 걸러지는 물고기들.

교회도 마찬가지 입니다. 교회에 낚시바늘을 던져놓고 계속 건져냅니다. 그래서 남는 자들만 남아 있습니다. 계속던져도 물지 않는 곳은 던지지 않습니다.

사단이 아무나 공격하지 않습니다. 물고기라 하더라도 다 무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의 공격에 끝까지 견디고 남는 성도만 남습니다. 10년째에, 30년째에 걸려지는 사람이 있습니다.우리에게 주어지는 죄의 유혹 - 그때그때 주어지는 사단의 미끼와 같은 것입니다. 그것이 사단의 미끼.

사단은 미끼를 잘 무는 곳에 미끼를 던집니다. 무는 사람이 계속 뭅니다. 한번은 육체의 소욕과 정욕을 뛰어 넘어야합니다. 그런데  그것을 넘지 못하면 안됩니다. 미끼를 던질때 율법주의자가 던져주는 미끼들이 더 좋와보였습니다.

우리가 성령의 치유, 은사.. 많은 것을 받고도 감사하지 못하면 교회밖의 종교적인 것이 더 좋게보입니다. 헌신, 봉사하는 삶이 더 귀하게보이지 않으면 세상의 것이 더 귀하게.

내 눈을 지키는 것. 내 마음을 지키는 것. 죄 - 내 마음을 빼앗는 미끼입니다. 거기에 매이게됩니다. 기도가 되지 않습니다. 기도도 되지 않습니다. 아무리 은혜를 받으려고 해도

10시간 기도하는 것보다 - 한가지 죄를 짓지 않는 것이 더 낫습니다.

10시간 예배드리는 것보다 죄를 끝지 못하는 것..

기도, 봉사, 거룩한 모습. 그러나 밖에서는 죄를 참지 못하면서 드리는 찬양과 경배가 무슨 힘이 있겠습니까? 모든 것을 다 해도 능력이 없습니다.

영적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능력을 가져야합니다. 죄를 지으면 분별력을 잃게됩니다. 사단의 꾀임에 빠지게 됩니다.

 
 

 
 

2.지혜로운 자의 눈(2)

 
 

1)듣고 믿는 믿음

모든 은혜의 주관자는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 이십니다. 성령을 통해서 변화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종교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변화되는 것이 믿음인지 율법인지 생각해보라. 율법의 공로인지 주님의 말씀의 능력으로 된 것인지 보라. 종교의 행위로는 변화시킬 수 없는 것입니다. 갈교인들 자기를 변화시킨 자기 인생을 변화시킨 그 능력을 헌신짝 처럼 버렸습니다. 율법은 지키면 지킬 수록 나를 탈진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더 좋게봅니다. 하나니므이 말씀을 영으로 들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혼으로 지식으로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최선을 다해서 성경 말씀을 지킬려고 해도 지키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성령을 점점 소멸하게 하는 것입니다. 더 마음이 완고하게 되는 것입니다. 네 영혼을 거스리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영으로 들어야합니다. 아무리 영으로 들으라 해도 듣지 못합니다. 영으로써 육신의 행실을 죽여야 영으로 들을 수 있습니다.

갈교인들 - 눈이라도 빼어줄 것같은 복음의 감격을 받은 자들. 그러나 지금은 싸늘해졌습니다. 눈이라도 빼어줄 것같은 바울을 싸늘하게 바울을 냉대했습니다. 율법의 로고스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아는 만큼 교만해집니다.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판단하는 일 외에 하는 일이 없습니다.

우리를 변화시키고 속사람을 바꾸는 것은 믿음으로 되는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자를 통해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2)율법의 행위를 분별함

이것이 영으로 나오는 말인지, 혼으로 나오는 말인지 분별해야합니다. 듣고 믿음이 생기지않는 사람은 종교생활을 하게됩니다. 내가 말씀을 듣는데 믿어지지 않는 사람들. 믿음이 안생기는데 하나님을 섬겨야하니까 율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합니다. 하나님은 믿음으로만 섬길 수 있습니다. 신령과 진정으로만 하나님을 섬깁니다. 믿음은 들음으로 납니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들 - 말씀을 들어도 믿음이 생기지 않습니다. 믿음은 쉬운 것입니다. 그러나 율법은 고되고 힘이 든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니까 할 수 업서이 율법의 짐을 지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 -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왜 그렇게 봉사를 하려고 합니까? 성령의 은혜는 없고, 믿음도 없으니까 봉사를 하려고 합니다. 율법주의자가 바로 그런 모습니다. 믿음은 오직 예수그리스도만 기쁘게하는 동기로 섬깁니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자기 마음을 드려, 자기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목적입니다.

믿음으로 하면 하나님의 영광이 되지만, 율법으로 하면 자기 업적이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보다 율법으로 사는 것이 자기에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자기 공로가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따른 만큼 자기 의가 대단해 지는 것입니다. 그 자고함이 말도 못하는 것입니다.  

 
 

요 5:44 너희가 서로 영광을 취하고 유일하신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영광은 구하 지 아니하니 어찌 나를 믿을 수 있느냐

하나님이 보내신 메시야는 섬기지 않으려고 하는 것. 서로의 영광을 위해 했던 것. 왜 사람들이 훈련은 받지 않으려고 하면서 일은 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마음은 없는데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는 열심을 내려고 합니다. 의도가 어디에 있겠습니까?

이것이 믿음과 율법의 차이입니다. 율법이 얼마나 믿음을 속이고 완전히 신앙을 잃게하는지.

 
 

우리교회는 성령의 역사로 은혜를 많이 주셨습니다. 여러분이 증인입니다. 질병치유, 말로 다할 수 없는 은혜를 받았습니다. 하라는대로 하고 놀라운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누가 과연 끝까지 견디는가? 이런 자에게 구원이 있습니다. 그렇게 뜨겁게 간증을 하고 가족, 친구, 직장을 변화시켜도 시간이 지나면, 5년이 못되어 사랑이 식어지고 교회를 떠나는 사람이 많이 있습니다. 몇 달이 못되어 낚시미끼에 걸러졌습니다.

교회ㅡㄴ 걸러진 작업에 하나님의 남는자들을 통해 역사하십니다. 은혜를 가지고 예수의 증인이 되고 하나님께 영광. 상급을 받는 도구로 은혜르 주신 것입니다. 병이 나았을 때는 철야. 새벽을 기도하다가 완전히 회복되면 하나님이 좋은 것들을 줘도 걸러지게 됩니다.

잡초를 뽑아야 열매맺는 가지가 더 열매를 맺습니다 열매를 방해하는 잡초들을 끊어줘야합니다. 받은 은혜를 지치기 못하면

 
 

아브라함과 롯 - 롯, 걸르도록 가운데 세우십니다.

모세와 40만ㅇ- 다 걸러지고 계속 불평했습니다. 거럴집니다. 걸러지고 나서야 여호수아와 갈렙이 상용화됩니다. 은혜를 받는 겅험이 없다? -증상(판단, 정죄, 언제 걸러질지 못릅니다. 하나니므이 역사에는 남는자에게 상급을 주십니다.

처음 사랑을 회복하ㅡㄴ 사랑으 가져압니다. 내 은사와 달란트로 얼마나 하나님을 위해사용하는가?

올해는 그런 자리에서 일어나야합니다.

일어나 걸어가야합니다.

율법과 종교의 삶에 한번 일어나야합니다.

멍에를 매고 마지 못해 끌려가는 인생. 멋지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하나님을 위해 사용하십니다. 견여야 저장고가 저장됩니다.

기도하러 나왔으면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로 묶인 영혼의 결박을 뛰어넘어야합니다.

 
 

기도를 못하게 하는 것은 죄를 먹었기 때문입니다. 돈을 벌기위해서는 죄를 지으면서하나님을 하는 것에 그정도의 의지력이 없다?

회복의 날이 될 것입니다. 죽기를 각오하고 신앙을 하면 살아난다고 하셨습니다. 입을 열어야합니다.

 
 

2009년 3월 19일 목요일

090315_자신을 장담하지 말라

1.일자: 2009. 3. 15

2.성경: 요13:36-38

3.제목: 자신을 장담하지 말라

4.찬송: 349장

 
 

매사에 적극적인 사람. 비록 도전적으로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다가 실패를 한 사람일지라도. 잘 하려고 하다가도 넘어진 사람. 하나님이 쓰실 수 있습니다. 다윗, 아브라함. 베드로.. 처음부터 실수가 없는 사람이 아닙니다. 불완전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적극적으로 하려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계기가 되어서 자기를 새롭게하는 기회가 됩니다.

실수가 없는 사람 - 실수없는 인생을 사려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사용되기 쉽지 않스빈다.

열정 - 확신과 비전이 있다는 것. 열정이 없다 - 비전이 없다는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자기 인생을 전념할 대상을 찾지 못합니다. 비전이 없는 백성은 망합니다. 허무한 것에 자기 인생을 낭비하게 됩니다. 무엇을 하든지 온 힘과 목숨을 다해서. 열정을 다해서 하는 인생. 다윗과 같은 열정을 가지고 하는 인생.

한번이라도 열정을 가지고 찬양, 기도하는 사람은 계속 전진합니다.

첫째는 헌신된 목표, 열정이 있어야합닏.

둘째, 훈련된 삶이 필요합니다. - 훈련이 없으면 자기의 것을 추구하는 것에 쓰임받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훈련되지 않는 열정은 다른 것에 자기의 목표를

열정이 있다면, 훈련받는 신앙을 해야합니다.

 
 

1.베드로의 열정과 장담(36-37)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지금 올 수 없다. 열정이 넘치는 베드로는 가만히 있지 못했습니다. 어디로 가시나이까? 자기는 따라가고 싶었습니다. 함께하고자 하는 열정이 있었습니다. 지금 너희 상황에서는 안된다고 했지만, 그러나 열정이 있는 베드로.

아무런 일도 하지 않는 10제자. 냉랭하고 소극적인 사람보다는 이렇게 열정이 있지만 실수를 하더라도 이런 사람을 하나님이 사용하십니다. 그런 열정적인 헌신을 보이는 것. 기질에 앞서서 다른 사도보다 예수님을 더 깊이 사랑한 신뢰가 그렇게 한 것입닏. 단순한 열정만으로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목숨을 바칠만한 열정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10제자 - 의심, 계산, 자기 궁리를 하는 사람.

그러난 베드로, 자기 목숨을 바치겠다는 각오를 하는 사람. 이런 사람. 이런 열정이 있는 사람. 자기를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을 하나님은 사랑하십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자를 만나주십니다. 부활후 요21 - 디베랴 바닷가. 떡과 생선을 준비하신 예수님. 오직 베드로를 향해서 "이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예수님은 베드로가 계속 살아왔던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렇게이야기 하신 것입니다.

 
 

잠 8:17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주님이 만나주십니다. 주님을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주님을 만날 수는 없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에게 주님이 만나주십니다. 예배나 찬양에 열정을 다하는 사람에게 주님이 마난주시지, 우연히 뜬금없이 역사하시지는 않으십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끝까지 따라가려고 합니다. 어디든지 가려고 합니다.

11제자중에 오직 베드로 한 사람이었습니다. 극한 상황에서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이 나타납니다.

엘리사 - 자기 스승 엘리야. 가장 사모하는 것이 스승의 은사와 능력을 사모했습닏. 갑절의 영감을 받게 된 계기.

엘리사가 끝까지 엘리야를 따라다녔기 때문입니다. 엘리야가 시험해 보았습니다 끝까지 따라다녔습니다. 데리고 간것입니다.  

모세가까이에도 여러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가까이의 리더층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를 끝까지 가까이 따른사람은 여호수아밖에없었습니다. 호렙산의 임재가 임할 때에도 같이 햇습니다. 모세이 리더쉽이 여호수아에게 임했습닏.

바울도 디모데에게만 나와 함께 좋은 군사로 훈련을 받자고 이야기 했습니다.

세상 유익을 위해서 살아가는 사람은 일시적으로 신앙생활을 핼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주는데가는 사람. 어디를 가시든지.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만이 예수님에게 쓰임받습니다.

교회는 언제든지 걸르는 작업을 하십니다. 늘 걸러지는 작업을 합니다. 그러나 끝까지 걸러지는 작업을 합니다. 은혜받는 것이 모두가 아닙닏. 끝까지 남아이쓴ㄴ 사람 - 주님을 위해 살려는 사람은 남습니다. 신앙을 하되 한 때 종교생활을 하다가 단물이 빠지면 없어지는 그런 신앙이 아니고, 남아 있는 신앙을 해야 합니다.

 
 

2.베드로에 대한 예수님의 예언(38)

 
 

베드로만 나서서 이야기 했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가만히 있는데, 격려 칭찬하지 않으셨습니다. 그의 열정에 찬물을 끼었는 말을 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는 전혀 예수님을 부인하려는 마음이 없는데도 배반하리라는 예언을 하셨습닏. 나머지가 있는데도 보고 있는데 나를 부인하리라는 말씀. 얼마나 수치스럽고, 챙피한 말씀을 하셨는가? 예수님을 배반하고 떠날것에 대해 말씀하심. 베드로에게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라야 따라올 수 있다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36 - 지금은 네가 따라올 상태가 아니다. 너의 신앙으로는 안된다. 조금후에는 네가 나를 부인하리라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다. 네가 연약한 자이지 나를 위해 목숨을 부인할 능력은 없다는 것을 예수님은 알고 있습니다.

누구나 신앙을 잘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주님이 나를 알고 있는 것과 내가 아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잘 했는데 왜이렇게 고난주고 어렵게합니까? 주님이 나를 몰라준다. 베드로를 베드로보다 더 잘알고 계시는 것입니다.

영으로 죽인 사람만이 갈수 있는 십자가의 길입니다. 의지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육신을 죽이지 못하는 열정만으로는 부인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마음으로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다.

죽기전에도 기도하라고 했는데도 기도도 못하고 육신의 세력하나도 이기지 못하고 목숨을 버릴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잠하나 이기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영적인 것을 이길 수 있는가? 장담하지 말라. 네 자신을 바로 알라.

영적인 상태를 바로 알라는 것입니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육신을 영으로 죽이지 않는 상태에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육적인 시험을 만나게 되면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예수님을 부인할 수 밖에 없습니다.

세상생활과는다릅니다. 오직 자기르 부인하고 예수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믿음의 핵심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만을 의지하는 것 - 그런 사람만이 예수님을 믿을 수 있습닏.

자기 뜻을 이루는 장담 - 영적으로는 실패하는 것입니다.

똑같이 예수님, 베드로도 죽고자 햇지만. 베드로 - 자기의로, 죽을 만한 가치가 있는 것에 목숨을 버립니다. 그런 의로운 마음이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치가 있는 사람 그런 주님이 죽으신것. 저사람을 위해 자기 인생을 버리는 인생.

그러나 예수님 이세상의 가치없는 죄인을 위해 죽는것. 하나님의 의를 나타내기 위해 죽는 것

베드로 - 열정. 자기 비전을 위해 죽는 것. 나중에 자기의 때문에 넘어지게 됩니다. 할만한 가치있는 일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 애매한 고난, 십자가 - 이런 것을 하지 못합니다. 열정과 자기 장담으로 하는 사람은 주님을 위한 일에서는 배반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은 이세상의 육신의 지위,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의 위대한 업적을 이룬 사람 - 교회에서는 벼로 할 일이 없는 경우가 많습니다.

모세 - 왕궁에서는 칼을 휘두름. 주님안에서는 미디안 광야에서 밑바닥에서 훈련을 받았습니다.

열심히 있는 사람은 나서서 뭔가를 하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에서는 영적으로 미약한 사람들. 더 영적으로 강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계.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 사단이 다스리는 나라.

베드로가 할려고 하는데 왜 안됩니까? - 사단이 방해를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 기도, 예배하는 것, 쉽지 않습니다. 능력이 없기때문입니다.

능력이 없기 대문에 겸손해 질 수 없는 것입니다. 예배를 드릴 수 없는 것입니다.

왜 베드로의 열정에 찬물을 끼엊습니까? 이런 상태로는 마귀의 세력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말씀합니다. 사단의 방해를 이겨야 예수님을 따를 수 있는데 이런 열정, 충성심 만으로는 따를 수 없는 것입니다.

 
 

후에는 따라오리라 - 오순절에 성령을 받을 때. 지나가는 그림자만 밟아도 귀신이 떠나가는 역사. 성령을 받지 않고는 예수미을 따라올 수 없습닏.

자기 공로가 됩니다. 딴 사람은 기쁘고, 감사하고, 그러는데 한쪽에는 힘들다, 꼭 이렇게 해야하는가?

황새는 나는 것이 재미있습니다.

그러나 뱁새는 나는 것이 너무 어렵습니다.

성령을 받지 않고 신앙하는 것은 뱁새가 퍼덕거리는 것과 같습니다. 성려응로 하지않는 것은 자기 공로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다녀도 종교적으로 오래되면 말씀대로 살지 않으면 지식으로 판단하고 어려운 것. 그러니까 어려운 것입니다.

처음에는 은혜롭다고 좋다고 합니다. 훈련을 받지 않는 사람은 얼마 못갑니다.  

 
 

눅 22:31 시몬아, 시몬아, 보라 사단이 밀 까부르듯 하려고 너희를 청구하였으나

눅 22:32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 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베드로가 괜히 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사단이 까부르기 때무입니다. 사단이 계속 까불리는 것입니다. 주님은 보고 계십니다. 베드로는 모릅니다. 그러나 내가 너희를 위해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 위해 기도하였노니.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더 큰 까불림. 주님의 중보기도 입니다

 
 

은혜가 좀 있으면 자기가 잘나서 된 것으로 생가합닏. 그래서 자기가 된 것을 생각을 하고 자기 혼자 신앙을 하려고 합니다. 모든 제자들이 떠나갔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할 때 육신을 의지하려는 사람은 장담할 수 없는 것입니다.

바울 - 육신의 세력을 장담했었습니다. 자기의 의를 의지 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만나주셨습니다. 자기를 장담했던 모든 것을 꺽으셧습니다. 네가 나를 핍박한다.

자기의 하고 있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자기 신앙을 장담하는 사람은 신앙이 잘 자라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봐야합니다. 신앙이 왜 안자랍니까? 자기 생각과 자기의지를 장담하는 것입니다. 모든 율법의 의를 장담할 때.

약한 것을 자랑하리니. 자기를 의지하는 것을 내려놓을 때 그 때부터 신앙이 자라가는 것입니다 변화되지 못하는 것을 내려놓을 때 주님이 역사하십니다.

 
 

내려놓을 수록 우리의 인생이 빨리 변화될 것입니다.

자기가 잘못일 수 있다는 것. 그것을 빨리 인정해야 변화됩니다. 새롭게 되기를 원하는 사람. 반짝 새롭게 되기를 바라는 것. 회개의 역사가 없이는 변화가없습니다

영으로 변화되는 것은 죄를 회개하는 것이 없이는 안되는 것입니다. 회개가 없이는 변화가 없습니다. 죄값을 치루지 않고 좋은 것을 추구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 - 큰 일꾼으로 쓰임받기 위해 회개의 역사. 자기의 장담이 완전히 꺽여지고 세번을 부인하는 사건. 은혜의 기횔를 주신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잘 변화되지 않습니다. 나를 장담하는 사람.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닫고 한 번쯤은 새롭게 되는 기회가 있어야 합니다. 자기의 의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7대 영역의 산지를 정복하려면 육적인 세력을 장담하는 것을 꺽여야합니다.

영으로 육신의 것을 죽이는 군사가 되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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