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7월 4일 토요일

090705_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1.일자: 2009. 7. 5

2.성경: 요14:27-28

3.제목: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4.찬송: 474장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있지 않으면 내 마음은 평안이 없습니다.

 
 

사 57:21 내 하나님의 말씀에 악인에게는 평강이 없다 하셨느니라

악인에게는 평안을 주시지 않습니다. 삶이 행복해질 수 없습니다.  

 
 

1.예수의 평안 

예수님이 누리는 평안.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 남이 줄수없는 평안.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다. 이 평안. 보혜사 성령. 내 대신 보혜사 성령을 통해서 주심. 사랑.희락,화평. 30-이세상 임금이 오겠음이라. 세상이 주는 평안 - 사단이 주는 방법의 평안. 마귀가 주는 평안을 찾기 때문에. 두려움과 걱정 근심에 휩싸이게 됨. 세상에서 주는 평안과 다르다. 예수님이 주시는 평안과 다르다. 영적인 평안입니다. 세상의 평안 - 물리적인 방법으로 평안을 줍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의 방법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배운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서, 지식으로 배운 평안입니다. 세상의 평안 - 환경과 여건을 바꿈으로 내가 평안해지기를 바랍니다. 또다른 환경의 어려움. 재벌과 학벌을 가진 사람. 불만족으로 불안으로 살아감. 평안 - 죄문제로 인해서 깨진것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깨어진것. 이것을 회보기해야합니다. 내아버지되신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서 회복하는 것. 나를 사랑사랑하는자는 나의 계명을 지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음. 예수님 자신이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기 위해. 아버지는 나보다 크시니라.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십자가를 지심. 하나님의 뜻을 따라 말구유, 십자가, 인간의 모습으로 그대로 오실 수 잇었던 것은 아버지와의 바른 관계에서 이루어진것이기 때문에 한번도 불평, 두려워하지 않으셨씁니다. 하나님 안에서 이루어진 것이기 때문에. 결국은 십자가의 고난앞에서도 하실 수 있었던 이유. 환경 여건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마귀가 주는 평안) 환경여건에 관계없이 항상 평안할 수 잇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가 내 영혼을 주관하는 상태가 내 마음의 평안입니다. 사단이 내 영혼을 다스리는 상태입니다. 불만족을 해소 할 수 있는 상태. 사단에 눌려있다는 상징입니다. 사도바울 - 나는 풍부에도 비천에 처할 줄 아는 상태에 처할 줄을 알았습니다. 과거에는 인정받는 인생을 살았었지만, 죽기를 각오하고 감옥안에서, 형평이 좋을 때난 어려울 때나 기뻐할 수 잇는 것은 예수님의 평안입니다.

요한 웨슬레 - 선교를 갔다가 처절하게 패배를 했습니다. 풍랑이 몰아쳤습니다. 목사,교사,선교사인 자신. 에수님이 자기를 지킬 것을 믿는데. 그런데 모라비안 성도들 - 그배에 타고 있던 평신도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송을 하면서 기뻐하는 것이었습니다. 요한 웨슬레의 경우. 하나님도 믿고잇으면서 벌벌떠는데, 하나님을 기뻐하고 찬양하는 평신도들. 거기서 충격을 받고 깊이 회심을 했습니다. 깊음 회심. 놀라운 위대한 목회자가 된 것입니다.

신앙을 하면서 하나님이 계신 것을 믿죠? 그러나 그 믿음이 언제 나타납니까? 자기가 믿고 따른 예수님이 자기를 떠난다는 상황. 내안에 예수님의 사랑이 있으면 상황에 따라 변화되지 않습니다. 좋으면 예수님을 찬양하고, 어려우면 떠나는 신앙은 바른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두려움이 있으면 두려움이 어디에서 온것인지 알아야합니다. 하나의 싸인입니다. 내가 평안 없다는 것은 중한 병이 있다는 사인입니다. 평안이 없고 불만족이다. 근심이 되고 불안하다 내가 하나님앞에 바르지 않다는 싸인입니다. 언제든지 평안이 회복될 줄 믿습니다.

 
 

2.평안을 얻는 방법

우리 인생의 평안을 파괴하는 것은 불안과 두려움. 인생의 문제. 불안과 두려움을 없애는것 - 우리의 죄문제를 해결하는 것입니다. 에수님은 우리의 모든 근본적인 두려움을 해결하신 분이십니다. 세상은 돈을 벌어서 일시적으로 평안할 수는 있지만, 그것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의 분노를 일으키는 사람. 죄문제를 해결하지 않고는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주시는 차별성입니다. 세상이 주는 문제 - 일시적으로 죄문제를 잊게하는 편법의 방법. 남을 미워할 때 내가 더 괴롭습니다. 죄를 생각나지 않게 하기 위해 영적인 마취제를 맞는 것과 같습니다. 중한 병이 있어 통증이 잇는데 마약을 준다고 통증이 완전히 없어지는 치료방법이 아닙니다. 마취제라는 술로 세상의 일을 잊어버리게 합니다. 다시 깨어나면 다시 돌아갑니다.

그러나 에수님의 평안은 그런 사탕발림이 아닙니다. 죄의 근본을 십자가에서 해결하신 평안입닏.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 해결하는 것입니다.

 
 

1)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죄

제자들-예수님이 십자가 사건으로 인해 두려움과 근심으로 쳐다보고 잇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자기 자신의 유익을 사랑하는 것을 드려다 보고 계셨습니다. 죽으시는 당사자이신 예수님. 왜 두려워하지 않으시는가? 자기를 십자가에 못박게하시는 하나님. 너희도 나를 사랑하였다면 나처럼 그렇게 하였다는 것. 나보다 더크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서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왜 근심하는가? 자기 목숨을 사랑하는자는 잃게될 것이다. 하나님보다.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근심하는 것입니다.  

평강이 없는 것은 욕심이 들어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보다 세상을 두려워하는 것은 욕심에 미혹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상을 숭배하는 것입니다. 사람이 감당할 수 없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기도할 때 사람들이 어떻게 그 문제들이 해결이 됩니까? 믿음이 적은 사람들은 그 문제들이 직접적으로 해결될 때 죄문제로 부터 나의 고통, 문제가 집접… 아닙니다. 먼저는 회개의 영이 터지게 하십니다 자기의 문제들이 일시에 해결되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대로 있습니다.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닙니다. 그 문제 때문에 불안, 근심이 왔으나 마음에는 불안과 근심이 오지만 회개로 인해 평강이 옵니다.

 
 

사 26:3 주께서 심지가 견고한 자를 평강에 평강으로 지키시리니 이는 그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 문제가 아무리 힘들고 어렵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은 나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으시고 인도해주십니다. 내가 어려우면 나만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나의 문제옆에, 나의 고통의 옆에 예수님이 같이 계시는 것입니다. 내 편이 되시고 믿는 것이 평안을 받는 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을 믿으면 목숨도 주관하시고, 인생 생명을 주관하신다는 것. 죽는 다고 할지라도 두렵지 않습니다. 베드로-야고보의 죽음. 베드로도 죽일려고 감옥에 채웠습니다. 양쪽에 군사를 채웠습니다. 베드로는 깊이 잠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에수님이 주시는 평안입니다. 그것때문에 두렵지 않았습니다.

무엇때문에 불안합니까? 그것에 두신 하나님의 주권, 뜻을 믿지 못하는 불신때문에 불안한것입니다.  

 
 

2)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죄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평안을 빼앗는 가장 실제적인 요소는 사람때문입니다. 부부라도 내 아내때문에 얼마나 마음 속상한 일이 많이 있습니까? 같은 직장, 같은 교우끼리도 그렇습니다. 모든 문제들이 사람사이에서 발생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때문에 내가 불행하다. 내자식문제, 물질 문제. 이것때문에 불행하다.. 이것은 실제가 아닙니다. 자기 마음이 평안하지 못한 문제는 나 자신에게 있다는 것입니다. 이세상은 죄악된 곳입니다. 이곳은 하나님이 쫓아 내셔서 사단의 통치를 받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이세상이 죄가 없다고 행복할텐데.. 자기도 완전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연약함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 자가당착입니다. 죄악된 사람과 더불어 살아야 할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이 악한 세상, 사람때문에 평안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세상 살기 싫다. 이세상 사람때문에 내가 불행하다. 그런 형편을 바꿔지지 않습니다. 아무 나쁜일도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환상적인 몽상적인 평안을 추구합니다. 진정한 평안. 외부적인 것이 아닙니다. 내적인 평안입니다. 죄를 이기는 평안으로 쟁취하는 것입니다. 공ㅉ로 그냥 받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사시는 시대. 정말 악하고, 어려운 시대였습니다. 헤롯이 얼마나 포악했습니까? 그시대에도 창기, 세리. 종교지도자들이 있었습니다. 평화로운 시대가 아닙니다. 에수님도 잘사신 것이 아닙니다. 목수. 좋은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죽이려는 모욕적인 대우를 받았습니다. 긂에도 항상 마음에 평강을 유지했습니다. 마지막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군병을 보시면서도. 십자가에서. 군병까지도 사랑으로 용서할 수 잇었기때문에. 군병이 착해서 내가 평안을 누린것이 아닙니다.

세상이 우리를 평안하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군병이 주는 것이 아닙니ㅏㄷ. 이세상사람들의 죄를 용서할 수 잇는 십자가의 사랑을 받은 사람을 용서할 수 있는. 그런데 보세요. 얼마나 좋은 조건에 있었습니까? 인정을 받고 거드름을 받고. 성경에 나오는 바리새인 서기관 행복하게 보입니까? 사건이 잇을 때마다 한시도 평안할 날이 없습니다. 좋은 조건 환경을 가지면서도 늘 불안. 세리, 창기의 죄를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스스로 죄를 감당하는 것입니다. 남이 괴롭게 했습니까? 바리새인과 창기들이 바리새인을 공격해습니까? 스스로 평안을 빼앗기는 스스로의 책임입닏. 이것을 볼 때 우리에게 주어지는 고통의 문제. 교회가 잘못햇기 때문이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없는 죄의 문제입니다.

세상이 할 수없는 평안을 주신다. 내가 십자가에서 용서 했기 때문에 다른사람의 죄를 용서 할 수 있고, 능력을 주심으로 평안을 얻게하시는 것입니다. 예수의 십자가의 죄로 용서를 받을 때 일시에 아무문제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그렇게 죄를.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용서를 받을 때, 다른 사람의 죄의 세력이 나를 공격할 수 없는 것입니ㅏ. 내가 다른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 죄가 나를 공격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로 용서를 해야 남의 죄가 보이지 않는 것입ㄴ지다. 평아능ㄹ 잃는 것은 다른 사람의 죄때문입니다.

 
 

마 7:3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

우리의 정곡을 찌르는 문제입니다. 이런사람들의 핵심문제입니다. 아직도 다른 사람의 티끌이 보입니까? 상처를 준사람의 문제가 보입니까? 일시에 자기속의 평안 깨어집니다. 두려움과 판단 짜증, 자기 자신이 피해를 가장 많이 봅니다. 그 형제의 죄를 용서하고 사랑하지 못하는 문제입니다. 자기 눈에 들보가 있기 때문입니다. 장점은 안보이고, 약점은보입니다. 죄의 눈. 사단의 눈입니다. 나쁜것 허물된것. 나쁜것만 봅니다. 티끌만을 보는 사람-사단의 고소와 질책과 판단을 가져다 줍니다. 자기눈의 들보가 빠진 사람. 형제의 어떤 연약함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일 4:18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을 할 때 두려움이 없어집니다. 형제를 사랑하면 근심 걱정이 없어집니다. 두려워하는자에게는 형벌이 있습니다.온전히 두려워하지 못하기 때문에 두렵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평강을 주십니다. 모든 두려움이 쫓겨나가게 되어있습니다. 하나ㅣㅁ을 사랑함으로 형제를 사랑할 때 두려움 분노 , 걱정 근심이 사라질 것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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