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12월 5일 토요일

091206_우리 삶의 본이신 예수님

1.일자: 2009. 12. 6

2.성경: 요17:1-5

3.제목: 우리 삶의 본이신 예수님

4.찬송: 91장

 
 

예수님 자신을 위한 기도. 어떤 삶을 사셨는지 함축적으로 나타냅니다. 매우 단순한 삶을 사셨다는 것입니다. 세상과 가까이 할 수록 나의 삶은 매우 복잡해 집니다. 괴로운 인생을 살게합니다.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갈 수록 굉장히 삶이 단순합니다. 하나님 안에서는 풍성한 삶을 살게됩니다. 예수님이 이세상에서 한가한 인생을 사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자신의 삶이 어떤 삶이며, 우리의 삶도 어떠해야 하는가? 첫단추를 잘 끼워야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인생의 첫단추 - 예수님입니다. 우리의 첫단추를 예수님 안에서 시작하면 바르게됩니다. 근본적으로 교횔르 다니는 사람이나 신앙의 확신이 없는 사람들. 어떤 인생을 살아야하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단추를 새롭게끼는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1.하나님의 사명을 위한 삶

 
 

1)보내심을 받은 삶 - 하나님의 사명을 받는 방법

  스스로 만들어서 자기가 계획해서 자기가 살아가는 인생이 아닙니다 자기의 포부와 계획과 꿈을 따라 사는 것이 세상의 방법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에 의해 보내지는 것에 의해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사명을 따라 사명의 장소로 보내지는 것입니다. 사명때문에. 사명의 장소 - 말구유, 기가 막힌 장소였습니다. 차디찬 말구유에 오셨습니다. 올 때부터 고통스러운 땅이었습니다. 자기가 원하는 자기를 죽이려고 하는 죄인들을 위해 영생을 주기위해 오셨습니다.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사명때문입니다.

3 - 영생은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경험적이며 체험적이며, 인격적으로 아는 것입니다. 신앙의 핵심적인 것입니다. 많은 말씀을 들었지만 인격적으로 아는 신앙의 앎이 없이 그냥 다닌 것입니다. 그냥 아는 것은 영생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알고.. 왜 교회를 오래다녀도 영생을 아는 생명력이 없이 지식으로 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생명력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오래 지식을 가졌다고 해도, 신앙이 자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기도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영적인 생명이 없는 종교적인 사람의 특징입니다. 성경지식이 얼마나 많이 했습니까? 그러나 그런 사람에게는 영생이 없었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아는 영적인 교제가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영 다른 이야기를 합니다. 영생이 있는 사람의 생각과 그렇지 않은 사람의 차이는 다릅니다. 영생이 없는 사람과는 대화가 통하지 않습니다. 생명을 가지고 잠을 자도, 시체는 생명이 없습니다. 영적으로는 같은 교회에서 같은 부모형제라고 해도 영적인 생명이 없는 사람은 시체와 잠자는 사람과 같습니다. 영생이 없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세상사람과 동일한 것입니다. 생명도 없고 영생도 없는 불행한 사람입니다.

내가 생명력이 있으면 다른 사람을 살리게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영의 말씀을 듣는 사람이 살아납니다.

 
 

요 5:25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하나님의 음성.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말씀. 죽은 자가운데서 생명을 가진 신앙을 해야합니다.

우리는 지금 이시대에 21세기에 살고 있지만 우리 영혼의 존재는 만세전에 있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생명은 하나님에게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때에 우리의 의도와 하나님의 때에 우리는 이시대에 태어나, 보여진 것입니다. 그냥 보내신것입니까? 큰 인류를 구원하는 사명을 위해 보내신 것입니다 만세전에 이미 택정하셨다가 우리를 절묘한 하나님의 타이밍에 우리를 태어나게 하신것.

우리는 사명이 있는 사람입니다. 우연히 왔다가 우연히 없어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이미 아시고, 부르시고, 사명을

우리가 이세상에서 잘먹고 잘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영혼을 구원하기 위한 존재입니다.이것이 나의 인생의 존재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없기에 인생을 방황하는 것입니다. 잘먹고 잘살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닙니다. 왜 교회를 다닙니까? 교회를 나오기 위해 교회를 나와서는 안됩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사명때문에 교회를 와야 하는 것입니다. 사명때문에 교회를 오셔야합니다.

 
 

2)하나님의 때를 따라 삶 - 사명을 감당하는 방법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사는 것이 예수님의 방법이었습니다 내가 원하는 계획을 세웁니다. 무엇을 해도 형통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때를 고집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교회에서 말씀을 들어도 내 뜻과 다르면 나와 상관이 없이 살아갑니다. 그래도 교회로 옵니다. 하나님을 위해 살아갑니다. 아무리 하나님을 위해 살아도 뜻을 위해 살기 위해 성경을 연구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과우리와의 차이입니다. 자기의 인생을 말씀에 올인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살아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그인생은 피곤합니다. 자기를 위해 사는 인생은 피곤합니다 우리는 많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영화롭게하는 것입니다. 내 영광을 위해 살려고 하니까 하나님이 하라는 것을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자기 비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삶이 복잡합니다. 끊임없이 문제속에서 복잡하게 살아갑니다. 마귀가 복잡한 인생을 살아가게 합니다. 이세상에 이름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그래야 우리의 인생이 확실하게 됩니다. 인생을 세상의 풍조를 따라 살아갈 때. 전혀 다른 인생이 됩니다. 지금 내가 무엇을 위해 바쁘고, 무엇을 위해 바쁜가를 생각해보아야합니다. 바쁜것은 하나님의 때를 따라 살지 않기 때문에 바쁜것입니다. 모든 분주한 것에서 주께로 오면 주님이 하라는 대로 하면 쉼을 얻습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것만 하고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것을 하지 않는 인생. 하지말아도 될 일에 쓸데없이 인생을 허비하지 않아도 됩니다. 하나님이 하지 말라는 일에 내 인생을 허비해서는 안됩니다.  

 
 

3)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삶 - 사명의 목적

  예수님까지도 이세상에 태어나실 때는 자기 자신을 위해 오시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니므이 영광을 위한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라는 일을 할 때, 부모님을 위해 태어난 인생도 없습니다. 나를 지으시고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 태어난 존재입니다. 하ㅏㄴ님께 자기 인생을 맡길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은 아직도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가?

 
 

사 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하나님의 영광의 도구로 쓰임받을 때 존재가치를 느끼는 것입니다. 시계. 마이크. 만든사람이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다른 것에 쓰이면 존재의 가치가 없는 것입ㄴ다. 내가 살아있다고 밥먹고 산다고 인생의 의미를 느낍니까? 인생의 의미를 위해. 하ㅏ님 앞에 지어진 대로 지어진 기능대로 살지 못하기 때문입니ㅏㄷ. 영광을 위한 존재의 가치. 내가 그런 존재를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그런 목적으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내가 그런 존재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내 영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내 존재는 그렇게 살아갈 때 나의 존재 가치가 느껴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하는 것인가? 내 삶은 만족한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한 번도 존재에 합당한 삶을 살지 못하게되는 것입니다. 자기 인생을 비참하게 하는 것입니다.

1 - 아들을 영화롭게하사(십자가에서 죽는 것) 아버지르 ㄹ영화롭게(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입니다. 이세상이 요구하는 가치있는 가치있는 것을 추구하면 가치이쓴ㄴ 인생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엑0 요구하신 사명을 감당할 때. 자기 육신대로 사는 인생은 망하는 인생입니다. 내 것을 헌신하고 포기할 때 내 영혼은 살아납니다. 이렇게 사는 것은 신앙생활으 하는 것이고, 이렇게 살지 못하는 인생은 육신대로 사는 인생입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과 원수가됩니다. 이세상의 많은 일을 하기 위해 태어난 존재가 아닙니다. 이때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가는 방법입니다. 인생을 하루하루. 허비하지 않기 위해서는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안됩니다. 정과 욕을 십자가에 못박을 수 없습니다. 할 수 있는 것이 업습니다. 신앙하는 것. 하나님 앞에 살았다하는 신앙을 해야합니다. 말씀이 무엇이 요구하는지 그것을 바라는 신앙. 그것을 하는 신앙입니다.
 

 
 

2.사명자에게 주시는 권세와 영광

 
 

1)권세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 만민을 구원하는 사명. 다스리는 권세가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 권세는 실제적으로 나타나기를 영원한 생명을 나타내는 권세를 나타나고. 영원한 심판이 나타나는 권세

 
 

요 3:18 저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

예수님의 권세입니다. 억지로 믿으라고 강요하지 않습니다. 권세를 행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 열국의 아비가 되는 사며을 주셨습니다. 모든 열국에 대한 축복과 저주의 권세를 주셨습니다.  

 
 

창 12:3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

그렇게 살지 말라고 한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것이 권세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영적인 권세가 주어졌습니다. 억지로 복음을 전할때 그렇게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권세가 이미 주어졌습니다. 영원한 복음을 권세가 이미 행해졌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입니다. 사람이 축복을 주고 저주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군들에게 그사람에게 대한는 태도가 하나님에게 대하는태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니므이 주신 권세에 순종해야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어떻게하는가? 보이는 하나님의 권세준자에게 어떻게 하는가? 그것에 따라 그사람의

 
 

2)영광

  영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했사오니, 하ㅏ님과 함께 했던 영광으로 회복해달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것. 이땅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닙니다. 우리의 본향. 하나님 나라. 이세상은 잠시 나그네와 같은 존재입니다.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잠시 있는 것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존재입니다. 사명을 감당하는 것이 이세상을 감당하는 이유입니다. 다시 본향으로 돌아갈 존재입니다. 영원한 심판의 지옥을 갈 사람. 다 한 사람 - 하나님 나라의 본향으로 돌아가는 영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 본향에서 떠나갑니다.

 
 

예수님의 기도를통해서 우리가 왜 신앙하며, 직장하며, 힘들게사는가? 우리가 어디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신앙을 장난으로 살지 말아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후회해도 무섭게. 영적 생명을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진지하게 살아야합니다 장난식으로 거드름을 피우면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장자권을 팔아버리는 인생을 살게 되었습니다. 내 인생이 태어난 것은 하나님의 사명을 위해 사는 거서이버니다 세상을 위해 올인하는 인생이 되어서는 안도비니다. 한번 뿐인 인생ㅇ. 잠시 사는 인생. 장차올 하나님의 영ㅇ광에 족히 비교할 수 업서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신앙생활으 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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