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자: 2009. 11. 29
2.성경: 요16:25-33
3.제목: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4.찬송: 401장
말씀이 없어서 실족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까지는 비사로 이야기 하였다. 그러나 성숙한 만큼 영적인 상태만큼. 지금도 말씀을 하실 때. 말씀을 듣는 사람의 영적 상태를 아십니다. 들리는 사람은 들리고, 실족하게 되는 사람은 실족하게 됩니다. 말씀을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됩니다. 잔다 - 그사람의 영적 상태입니다. 정확하게 아신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비유로 하시지 않습니다. 장차 제자들이 성령을 받은 후에 자립적인 신앙을 해야됩니다.
1.기도하라(25-32)
내가 계속 기도하였기 때문에 이길 수 있었습니다. 보호 기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떠난 이후에 너희 들이 시험에 들지 않도록 기도하라. 바위 앞에서 기도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는 사람.
1)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
마 10:37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마 10:38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니라
자기 자신이 우선이 아닙니다. 자기를 사랑함으로 예수님을 이용하고, 자기 유익을 위해 다니는 종교인들이 있습니다. 예배에 와도 자기 시간을 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언제 기도할 자격을 주십니다. 기도의 능력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으면서 자기 면죄부를 받기 위해 오는 사람. 그런 사람들을 쫓아 내야합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
2)예수님을 믿는 사람
기도할 수 있는 이유. 구원자로 믿는 사람만. 대 제사장만이 양의 피를 가지고서만 피를 의지해야 죽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미 십자가에 용서 하기 위해 돌아가신 것을 믿는 사람. 죄를 용서 함 받았기 때무입니다. 나의 죄가 다 용서 함받았다는 믿음이 있는 사람만 기도할 수 있습니다.
3)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사람
하나님이 받아주셔야 합니다. 기도해도 된다고 허락한 사람만이 가능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 누가 받아 들일까?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예수님을 사랑할 때 아버지도 사랑하시리라. 예수님도 사랑하지 않는데 계명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순종해서 사는 것입니다. 자격없이 부당하게 하나님께 나가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특권을 회복해야 합니다. 기도하지 않고 왔다갔다 하시는 것은 종교인입니다. 아무리 은혜를 많이 받고 유지해도 기도의 능력이 없으면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제자들이 기도. 흩어질 때가 온다는 것입니다. 사단과의 영적 전투에서 선봉해서도 승리하신 것. 권세를 사용하신 것. 체포되는 당사자. 군병은 예수님을 잡으러 온것입니다. 각자의 믿음의 분량에 따라 흩어지는 것입니다. 요한과 베드로는 끝까지.. 각각 제곳으로 돌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간다. 술집에 다시 들어갑니다. 형식적으로 종교생활하다가 다시 시험을 받으면 다시 종교생활로 돌아갑니다. 삼년동안 집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제자들. 각자 자기 생활로 돌아갔습니다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도하지 않는 사람은 사건을 만나면 추풍낙엽이 됩니다. 매일 꾸준히 기도해야합니다. 평소에 기도의 분량을 체우시기 바랍니다.
2.담대하라
1)환난을 당함
요 15:19 너희가 세상에 속하였으면 세상이 자기의 것을 사랑할 터이나 너희는 세상에 속한 자가 아니요 도리어 세상에서 나의 택함을 입은 자인 고로 세상이 너희를 미워하느니라
지금도 내안에는 예수님이 살아계십니다. 신앙의 환란이 없다는 것은 죽은 시체와 같습니다. 누가 미워하겠습니까? 내안에 생명이 있다는 것. 사단이 먼저 알아봅니다. 믿지 않는 가족, 세상사람을 통해서 역사합니다. 기도하고 말씀대로 살려고 하면 사단의 진들이 넘쳐납니다. 그것을 각오하지 않으면 담대하라 그러는 가운데 고난가운데 믿음의 진수가 나타납니다.
2)담대하라
욥 3:25 나의 두려워하는 그것이 내게 임하고 나의 무서워하는 그것이 내 몸에 미쳤구나
세상이 감당할 수 없는 담대함이 생깁니다. 주님은 그것을 보기 원하십니다. 환난앞에서도 담대한 믿음. 두려움을 가진다는 것은 이미 그 전쟁에서 진것입니다. 염려가 든다. 그것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싸워서 평강과 확신을 가질 때까지 두려워할때까지 안하는 것이 좋습니다. 두려워하는 것이 있으면 인생의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고 들에서 양을 치는 소년 다윗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최고 장군도 두려워했습니다. 다윗은 만군의 하나님. 두려움을 갖게한다는 것. 다윗에게 담대함을 가진 순간 전쟁을 이긴 것입니다. 창과 전술로 한 것이 아니라, 이길 수 있다는 믿음. 믿음으로 이긴 것입니다. 내 문제를 두려워하고 있는가? 두려워하지 않을 믿음이있는가? 이것이 나의 인생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모든 깊은 두려움이 있습니다. 두려워하는 것. 사울은 왕의 갑옷을 입고도 골리앗 앞에서 두려워 떨고 있었습니다. 세상에 매여 있는 사람들. 내가 자격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자기보다 부족한 사람들이 ㅊ라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넉넉히 되어야 하는 일이 안되는 것. 두려워하는 영을 초청하는 것입니다. 두려워하는 영에 굴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무엇을 두려워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내가 곧 병으로 죽을 것같아도.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그렇게 됩니다. 내가 물리치면 나에게 들어올 권리가 없는 것입니다.
다윗과 같이 세상적으로 가진것도 없고, 그러면서도 늘 당당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3년동안 학위를 주었습ㄴ까? 직장, 돈을 주었습니까? 3년간 데리고 다닌 결과는 아무것도 없었습ㄴ디ㅏ. 세상을 살아갈 보장이 없었습니다. 친구들을 이리떼같은 곳에 가는 것입니다. 학벌이 있어서 담대한 것이 아닙니다. 무엇때문에 담대한 것입니까?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세상을 이긴 예수님 안에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안에 계시면 나는 역전하는 인생이 됩니다. 두려움의 노예가 됩니다. 내가 두려움에서 빠져나갈 구멍이 없어도 그런 상태라도, 예수님이 나의 모든 문제. 다 승리하셨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믿을 때 나는 담대할 수 있습니다. 두려워하지 않는 사람은 아무리 두려워도 그것이 임하지 않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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