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 09. 25 (금요밤기도회) > 성경 : 마가복음 10장 46-52절
제목 : 바디매오의 믿음
46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시편 107편 10,11절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결박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생은 몸과 영이 온전하게 되어 정복하는 인생입니다. 원래 하나님이 정하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하면서 하나님께 구해야합니다. 회복-정상상태로 돌려놓는것. 치유-원래대로 되돌리는 것. 치유되지 않는것을 운명으로 생각하면서 그냥 안고 살아가려고 합니다. 운명주의. 주신것에 감사하라고 하지만 운명주의는 성격적인 것이 아닙니다. 지족한줄로 알아라-이것이 운명주의 적으로 생각하는 것이아닙니다. 절박한 믿음을 가진 한 사람. 나도 원치 않고, 하나님은 더욱 원치 않는 것을 치유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예수님을 위해
52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님을 길에서 좇으니라
눅 10명의 문둥이. 모두 제갈길로 갔습니다.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구하는 것인가? 오랫동안 끌어오던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면 그마음이 바디매오의 마음입니다.
1. 여리고의 바디매오같은 내 인생 (46절)
허다한 무리가 예수님을 따름. 소경거지 바디매오. 디매오(불결하다,더럽다). 아버지도 거지이거나 문둥병자일 가능성. 소경이요 거지. 2대에 걸쳐 거지, 질병의 저주가 흐르는 집안. 바디매오. 소경에 거지이면 뭘할 수없는 입장. 오직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거지의 일밖에 할 것이 없음. 동네는 좋은 곳-여리고, 아름답고 비옥한 땅. 헤롯왕이 건설하여 수도를 삼을 정도로 좋은 땅. 좋은 환경일지라도 바디매오에게는 얻어먹기 풍부할뿐 다를 것이 없음. 자신만 이런처지로 살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로 더욱 비참해 할 수 밖에 없음.
왕하2 - 여리고가 비옥하고 좋은 땅으로 바뀐 배경이 있습니다. 선지자 엘리사의 치유. 터는 아름답다. 물근원을 치유하라. 선포했습니다. 그날이후로 결실하는 땅으로 바뀜. 기쁨의교회 - 물근원이 바뀐 여리고성과 같은 곳입니다. 우리 인생의 문제가 해결된 곳입니다. 하루하루 영적인 말씀을 듣는 가운데 우리 인생의 문제를 들고 나온 교회. 이런 곳에서도 치유를 받지 못하는 사람. 바로 여리고의 바디매오와 같은 사람입니다. 많은 은혜를 받고 받고 또 받았지만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늘 고민하는 사람. 바로 여리고의 바디매오 같은 사람입니다. 다 해결됬어. 특별한 문제가 없어. 그렇게 고백하는 사람. 그러나 나많이 아는 치명적인 문제를 고백하는 사람. 바디매오와 같은 심정으로 나온 사람입니다. 나의 가장 고질 적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 어떻게 주님앞에 가져갈 것인가? 바디매오의 나이는 나와있지 않습니다. 얼마나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몸부림을 쳤을까? 자신의 삶이 소경이고, 거지고, 대를 이은 저주의 인생 - 그러나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이지 않앗습니다. 바꿀수있고, 뒤집기를 하려고 했다는 것입니다. 지금 그 나이가 되기까지 해결받지 못해서 체념할 만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음. 내인생에 대해 정하신 바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좀더 얻어먹기 위해 배부르기 위해 그렇게 살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잘 먹기 위해 그런 곳을 찾아다니지 않았습니다. 나처럼 이렇게 망가진 인생.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의 눈과 관점으로 바라보려고 한 것이었습니다. 운명주의를 버리고 예수님을 만나면 나의 인생이 바뀔 것이라는 생각으로 주님께 나온 것입니다.
두가지 선택이 가능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 생각의 사고도 비참하고, 현실도 비참. 미래도 밝아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긍정의 생각 - 나에게 더큰 할 일이 있을 거야. 하나님은 포기하지 않으셨어. 끝까지 포기하지 말아야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렇게 기적으로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생각이 바뀔 때 행동, 습관, 운명이 바뀝ㄴ디ㅏ.
대상 - 야베스의 기도. 긍정적인 사고방식때문에 존귀한 인생으로 바뀔 수 있었습니다. 누구에게 나아갔는가? 하나님께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우리의 생각과 사고를 바굴수있다면, 우리의 인생도 바꿀 수 있습니다. 기적을 체험하고 가계의 물근원을 치유받을 수 있습니다. 나도 여리고땅에 어울리는 ㅇㄴ생을 살게될 수 있습니다.
2. 한번으로 운명을 바꾸는 믿음 (46-51절)
1) 예수님이 계신 곳에 있으라 (46)
46절
저희가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소경 거지 바디매오가 길가에 앉았다가
내 운명이 바뀌기를 원한다면 예수님이 계신곳에 있어야 합니다. 나도 볼수있어. 이런 비전을 가진 바디매오. 선한 소원을 ㅏㄱ졌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으면 좋겠다. 기대, 소원. 사람은 그것을 바라고 소망합니다. 사람이 마음속에 품는 것을 생각하고 바라면 그것이 이루어집니다. 예수님께 모든 초점이 맞춰져 있었습니다. 눈이 안보이면 귀가 밝아집니다. 바디매오는 에수님을 만나기만 한다면, 바디매오의 귀에는 적선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려는 열망만이 가득했습니다. 반드시 만나게 됩니다. 그런 소원과 확신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예수님이 비켜가지 않습니다.
길목을 잡는 재능(?). 어느 길로가야할 지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이곳도 예수님이 계신곳이고, 역사하는 곳입니다. 옛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빌립보서 2장 13절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잠언 8장 17절
나를 사랑하는 자들이 나의 사랑을 입으며 나를 간절히 찾는 자가 나를 만날 것이라
하나님의 입장에서 생각하면, 나를 간절히 찾는 사람이 누구인가? 찾는 자가 누구인가? 예수님이 찾으십니다. 한사람 두사람 여리고에 모여듭니다. 에수님도 ㅏㄴ사람을 cw고 계셨습니다 나를 찾는 한 사람을 찾고 계셨습니다. 나를 찾고 찾는 사람. 사람들이 나를 애워싸지만 이사람들에게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에수님을 만나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라는 간절한 한 사람. 바디매오. 여기에서 기적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이 오늘밤 우리 사이를 다니시면서 바디매오와 같은 사람을 찾으십니다.
2) 말씀을 근거로 부르짖으라 (47)
47절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예수님에 대해 알아보았을 것입니다.
마태복음 2장 23절
나사렛이란 동네에 와서 사니 이는 선지자로 하신 말씀에 나사렛 사람이라 칭하리라 하심을 이루려 함이러라
나사렛 사람. 나사렛사람이라는 것을 알아습니다.
누가복음 4장 18절
주의 성령이 내게 임하셨으니 이는 가난한 자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시려고 내게 기름을 부으시고 나를 보내사 포로 된 자에게 자유를, 눈먼 자에게 다시 보게 함을 전파하며 눌린 자를 자유케 하고
사람은 자기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게 됩니다.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곳바로 튀어나왔습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곧바로 튀어나온 고백입니다. 예수님을 향해 부르짖는 위대한 고백. 가이샤라 비립보의 베드로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믿음의 고백이었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이니라. 베드로의 신앙고백을 칭찬했습니다. 하나님이 알려주신 것입니다.
그러나 바디매오의 고백. 마음의 가득한 것이 튀어나온 것. 용암이 끓고 있었던 마음의 고백. 예수님이란 분에대해 듣고 나서부터 늘 이렇게 왜쳤을 것입니다. 당신이 메시야인줄 믿습니다. 계속 끓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한번만 오시기만 하면 좋겠습니다 에수님이 나의 인생을 바꿀 분입니다. 이런 독백을 수도없이 했었습니다. 그런 고백이 튀어나온 것입니다. 불쌍히 여겨달라는 고백을 외면하신 적이 없습니다. 인생을 바꾸실 치유자 예수님. 불쌍히 여겨주세요. 주님은 반드시 찾아오실 것입니다.
3) 방해에도 뒤로 물러서지 말라 (48)
예레미야 33장 3절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비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바디매오는 처음부터 부르짖었습니다. 삭개오 - 먼저 알아보신것처럼. 예수님이 먼저 알아보셨을 것. 바디매오의 고백과 외침을 듣고자 하셨습니다. 모든 것을 다 아시는 주님도 우리가 두드리고 부르짖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마태복음 7장 7절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8절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을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 열릴 것이니라
주님은 알아서 주시지 않습니다 구하는 이마다 얻을 것이요. 두드리는 자마다 열릴 것이니라.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얻을 때까지는 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방행의 문턱에서 좌절했기 때문입니다. 거기까지가 우리의 중심이었습니다. 마음의 간구가 쌓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나는 다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계, 나의 한계가 다릅니다. 생각의 방해, 감정의 방해가 있습니다. 어떤 방해이든지 뛰어넘지 못한 것입니다 얻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방해 - 우리의 진정한 마음의 중심을 테스트하기 위한 과정입니다. 치유의 사례 - 중도에 좌절한 사람. 통과한 사람의 결과. 나아만 - 자기가 생각한 대로 되지 않는 것에 대한 생각의 방해. 방해가 부딪히는 순간. 결정적인 순간. 방해 -끝이 보이는 구나. 이렇게 생각하면 됩니다. 수로보니게 여인 - 물이 휩싸여서 환경의 방해. 옷깃을 만져도 될까? 문제의 막바지에 왔다는 것을 깨달아야합니다.
48절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심히 소리질러 가로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모든 사람이 바디매오를 비난했습니다. 무리, 군중과 바디매오의 차이는 심정의 차이입니다. 소동이 일어났습니다. 방해때문에 그 소리가 예수님의 귀에 들어간 것입니다. 바디매오를일으켰습니ㅏㄷ. 더욱 소리를 높여야 합니다.
49절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저를 부르라 하시니 저희가 그 소경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너를 부르신다 하매
4) 삶의 태도를 바꾸라 (50)
50절
소경이 겉옷을 내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겉옷- 자신의 삶과 태도를 말합니다. 내가 그전까지 살아오던 그런 사고 방식을 말합니다.
이사야서 55장 7절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
불의하고 악한 행실을 버립니다. 우리의 간구하는 소리. 우리의 행동의 결단을 원하십니다. 삭개오. 즉시로 나무에서 내려와 영접하는 결단이 있었습니다. 행동으로 믿음을 보엿습니다. 나의 소원을 적확하게 고백하라.
5) 나의 소원을 정확하게 고백하라 (51)
51절
예수께서 일러 가라사대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소경이 가로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선생님. 듣기를 원합니다. 해결받기를 원합니다. 고백으로 밝혀야합니다.
로마서 10장 10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과 입이 연결이 되어있습니다
마가복음 11장 23절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지우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룰 줄 믿고 마음에 의심치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말로 선포한 것을 의심하지 않으면 그대로 됩니다.우리의 운명도 바뀌게 됩니다.
3. 영육의 새로움으로 예수님을 좇음 (52절)
52절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저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좇으니라
예수님의 선포. 치유와 회복이 이루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디자인 하신것이 아니야. 선포가 된 대로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것입니다. 영적인소경.
요한복음 9장 39절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소경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영의 세계를 아는 우리들. 세상의 모든 것을 보면서도.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인생입니다. 바디매옹의 인생의 부재. 자기가 보지 못하는 것 때문에. 평생을 거지로 살수밖에 없는 악조건 때문에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간절히 찾고 구했기에 예수님을 만나 기적을 체험하기 이전에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깨닫게 됨. 기적으로 뜨게된 눈을 통해 예수님을 끝까지 따르게됨. 나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나오게 하고. 그래서 나의 영의 눈이 열리게 하고. 그것때문에 천국의 축복을 소유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영생의 축복을 받게된다면 그것도 감사한 일. 그러나 그 기적과 은혜로 문제가 해결된 인생. 이제는 치유하고 회복해주신 하나님을 위해 살기로 결단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그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내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나의 고백을 가지고. 기적을 체험하기를 바랍니다. 우리 만큼이나 찾고고하는 에수님께.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