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구분: 2009 여름 수련회
2.일자: 2009. 8. 7(금, 저녁)
3.성경: 요4:1-30
4.제목: 상처로부터의 쉼
우리 인생이 달라지는 것. 내 영원한 인생을 달라지게하시는 예수님. 예수님을 만나는 것에 마음을 드리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안고있는 근본적인 인생의 문제를 다 이루어 놓으신 분이십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을 사모하는데 안만나지고, 어떤 사람은. 교회안에서 절제의 생활은 다하지만 정작 예수님은 잘 만나지 못하는 사람. 교회안에 있는 그런 사람들. 정말 잘 섬겨주어야 합니다. 너무 너무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 문제를 한마디로 설명하십니다. 이 한마디만 들으면 예수님이 누구신가 분명히 알수 있습ㄴ디ㅏ.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만나고 어떤 사람이 만나지 못하는지 여기에 해답이 있습니다.
여리고의 많은 사람. 병자도 많고 세리도 많았습니다. 예수님 주위에 따라다니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뒤늦게 삭개오가 나왔습니다. 자리가 없었습니다. 삭개오가 갔을 때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죄만 지었던 사람입니다. 욕을 먹고 정죄받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여리고에서 주님을 만난 사람은 오직 한 사람입니다. 에수님을 만나고 인격적으로 인생이 바뀐 사람은 삭개오 한 사람밖에 없습니다. 군중은 예수님 가까운 자리에는 있을 수 잇습니다. 그러나 은혜는 없습니다.
혈루증 여인. 그동네 병자가 그 여인 밖에 없었습니까? 열심히 따라다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날도 그 동네에서 군중은 많았지만 에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서 변화되었습니다. 들러리 신앙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 사람을 들러리 되기 위해 이곳에 올 필요는 없습니다. 주님이 초청해 주신 것입니다. 주님이 만나주시기 위해 오신 것입니다. 만나주시기 위해 이곳에 오신 것입니다. 내가 만나고자 하면 만나게 됩니다. 만날때까지 주님을 만나십시오. 에수님을 만나는 한 여인. 어떻게 해서 그 인생이 달라지고 변화되는가? 한번 이 여인의 변화. 놀라운 변화. 이 여인과 같이 될 것을 기대하십시오.
1.예수님이 찾아가시는 사람
예수님은 이시간에 갈 일이 없습니다. 낮잠을 자는 시간. 이시간에 여기를 지나가야 할 것입니다. 그 시간에 가야만 할 사람이 있었습니다. 거기에 가야만 만나는 사람. 늦게가면 없습니다. 그 시간에 안가면 안되는 사람. 그 뜨거운 곳을 강행군해서. 행로에 곤해서 우물에 털썩 주저앉음. 이여인. 어떤 여인. 사연이 있는 사람입니다.
1)유대인에 대한 상처
앗수르에 의해 혼혈민족이 되어버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특권을 상실함. 동족으로 인정하지 않음. 상종도하지 않고 멸시하고 무시했습니다. 조롱했습니다. 사마리아인을 무시했습니다. 같은 동족이면서도 멸시를 당하는 유대인에 대한 상처가 있음. 자기 잘못이 아닙니다. 출신 배경때문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부모의 부끄러운 죄. 직업때문에 상처를 겪었습니다. 자기가 그동네 태어나고 싶어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나는 눈이 작고 싶어서 그렇게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학벌 직업. 외모. 자기 탓이 아닙니다. 분노와 상처가 잇습니다. 유대인은 상종도 안하면서 아쉬우면 왜 나에게 도움을 청하는가? 15 - 하필 유대인 남자를 만났습니다. 가장 상황이 어렵고 절망적일때 찾아오시는 분이십니다.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을 때. 그런 상황에서 주님이 오십니다.
2)남편에 대한 상처
남편이 과거에 다섯명. 현재도 동거남. 남편에 대한 집착이 대단합니다. 기대가 큰 만큼 실망이 큽니다. 다섯번씩이나 포기하지 않고. 나도 한번 행복하게 살아야겠다. 좋은 남편을 만나기를 바랍니다. 자기 이상을 따라 결혼을 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이혼을 잘 합니다. 상처가 있는 사람과 같이 살면 너무나 힘이 듭니다. 남편이 누구입니까? 하나님보다 더 집착하는 것이 남편입니다. 돈에 집착하면 돈이 남편이 됩니다. 학력에 대한 상처. 하나님보다 거기에 집착을 하려고 합니다. 욕심이 상처를 줍니다. 상처문제를 쉽게 해결할 수있습니다.
3)동네 사람들에 대한 상처
대낮에 물을 길을 수 밖에 없는 상처. 동네사람들의 눈총. 수근 거리는 사람들. 사람을 피해서 살수 밖에 없습니다. 그사람에게 외곡적인 관점을 갖게합니다. 동네사람들에 대한 피해의식. 유대인은 사마리아사람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할 수 없습니다. 유대인 입장에서는 분노가 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남의 입장에서 생각할 여력이 없습니다. 뿌리깊은 피해의식. 죽기전에는 용서 할 수 없는 도저히 용서 할 수 없는 것. 상처는 일방적인 것이 아닙니다. 치유받은 사람의 특징은 상대방의 입장에서 내가 상처준 것이 생각나게 됩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줄수잇습니다. 건강한 사람은 상처를 잘 받지 않습니다. 상처 - 건강한 자아상을 가지면 상처가 될 것도 안됩니다. 상처를 자랑하지 마십시오. 상처로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상처자체는 문제가 적습니다. 아이가 다칠 수가 잇습니다. 그러나 상처가 나면 상처는 별로 문제가 아닙니다. 세균이 감염이 되면 그것이 문제가 됩니다. 상처가 있으면 그대로 있지않습니다. 우리의 상처를 두고 악한 영이 들어갑니다. 상처때문에 그런것이 아닙니다. 상처를 두고 악한영이 이용하기 때문입니다. 악한 영이 빠져나오면서 치유가 됩니다. 예수님은 이런 상처난 사람을 치유하시는 것입니다.
2.상처를 치유하시는 예수님
이물은 계속 먹어도 목마르다. 그러나 내가 주는 물을 먹으면 영생하도록 하는 샘물이 된다. 이세상의 물. 아무리 먹어도 갈증을 해결하지 못합니다. 생수를 먹기 전까지는 해결되지 않습니다. 영혼의 문제이지 육신의 갈증의 문제가 아니다. 여인이 그것을 사모함. 이물을 나에게도 주시오. 도저히 해결할 수 없습니다. 마음의 뚜껑을 열었습니다. 마음문을 열었습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주님이 그 마음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입니다. 주님은 갑자기 나의 아킬레스건과 같은 것을 건드리셨습니다. 가장 상처있는 사람에게 상처이야기를 하셨습니다.
1)상처를 드러내시는 예수님
가슴아프게하기 위해 예수님은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내 피해의식, 감춘다고 치유되지는 않습니다. 이 여자 - 반사적으로 부인했습니다. 나는 남편이 없어. 남편 이야기를 꺼내지도 마세요. 지긋지긋합니다. 그런 심령으로 남편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다 알고 있었는데. 알고 싶어서 물어보신 것이 아닙니다 기회를 주시기 위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나는 남편이 없어요!! 그여인의 모습을 보고, 그래. 내가 너의 아픔을 다 안다. 남편의 이야기만을 들어도 얼마나 아프냐? 네가 남편으로 부터 받는 어려움. 경험. 아픔. 상처. 그것을 받을 때 나도 너와 함께 잇었다. 내가 너를 도와주기를 원한다. 남편이 없다는 여인의 말을 무섭게 보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남편때문에 시달려왔으면 그렇게 괴로워했는가? 사람은 육감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상대방이 먼저 압니다. 느낍니다. 사람은 영이기때문에 압니다. 여인을 체휼하는 마음으로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친정엄마도 가족도 아픔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자기 딸을 감싸던 부모, 형제도 없어졋습니다. 상처난 자에게 상처를 더 뿌립니다. 어느누구한사람도 나를 위로하지 않앗습니다 그동안 마음이 얼마나 아팠겠습니까? 이렇게 위로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참으로 당신이 힘들었겠군요. 어느 누구에게도 인정을 받지 못하는 여인. 죄를 지을 때. 죄인의 심정이어떻습니까? 내가 먼저 압니다. 얼굴을 들 수가 없습니다. 정죄받고 비난받아야할 것을 압니다.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내게 와서 위로하였으면 될 것을. 한 사람도 그런사람이 없었습니다. 내가 아무리 못된 죄를 지어도 얼굴을 못듭니다. 내 부모든지 어떤 사람이든지. 그럴수도 있지. 내가 있잖아. 세살배기 어린아이라도 와서 그렇게 한다면. 한번도 따뜻한 말을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내 허물과 죄를 정죄하기 위해 오신 분이 아니십니다. 예수님은 죄인들이 죄짓는 상태가 얼마나 힘든지알고 계십니다. 세리와 창기들이 겪는 아픔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그 세리의 마음을 너무나 깊이 알고 계십니다. 왜 그들의친구가 되겠습니까? 현장에서 간음한 여인도 정죄하지 않으셨습니다. 네가 얼마나 어려우면. 그런 죄를 지었는가? 그것을 깊이 체휼하셨습니다. 죄를 체휼한 사람이 죄인을 쳐다보는 눈빛이 다릅니다. 다른 사람이 나를 정죄하기 전에 예수님이 나를 먼저 정죄할 것같은 오해가 생깁니다. 에수님은 정죄하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닙니다. 상처와 쓴뿌리에 겪은 아픔을 감당하고 이해하기 위해 오셨습니다.
그래 네말이 맞다!! 거기서 그 여인의 마음이 열렸습니다. 상처를 어떻게 치유를 받습니까? 에수님을 영접하기만 하면 모든 상처가 치유받습니다. 자기의 모든 죄를 용서함 받는다는 의미입니다. 더 이상 상처가 상처로 남지 않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상처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에 상처가 생기는 것입니다. 이세상 사람은 모두 죄인입니다.이것은 무리입니다. 내 안의 기준을 만족시킬 수 잇는 것은 없습ㄴ디ㅏ. 혈기도 내고 탓도 하고. 아이가 놀면서 어떻게 안부딪힐 수 있습니까? 바로 나에게 상처를 준사람을 용서하지 못할 때 그것이 쓴뿌리가 생기는 것입니다. 내가 남에게 상처를 준것. 일방적인 피해자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만날 때 내 모습을 보게 됩니다. 죄인의 모습을 발견하게됩니다. 내가 받은 상처보다 나로인해 다른 사람이 받았을 상처가 더욱 컷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타인의 잘못을 용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할 능력이 없는 것입니다. 상처가
2)상처가 치유된 새 인생
동네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동네사람의 영혼이 이제는 너무나 불쌍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죄인 하나도 감당할 수 없는 동네사람들. 이들이 너무 불쌍해 졋씁니다. 내죄가 용서함을 받으면 다른 사람이 다르게 보입니다. 내 눈의 들보가 보이니까 다른 사람의 티끌이 보이는 것입니다 동네사람을 용서하지 못하니까, 동네사람에 대한 상처가 생겼습니다. 이여자는 동네에 들어가서 꼭 남편 문제를 이야기 할 필요도 없었는데 와서 이야기 했습니ㅏㄷ. 자기의 과거의 이야기를 했스니ㅏㄷ. 과거의 부끄러움을 절대 과거를 말하지 않았습니다. 죄가 용서받은 것. 물긷는 것이 나의 소망이요 비전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한 영혼을 변화시키는 것이 비전이 되었습니다. 온 동네사람이 다 나와서 에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이 오늘도 이런 사람을 찾고 계십니다. 예수님이 아니면 소망이 없는 인생. 그런 사람을 위해 오늘 수련회에 부르신 것입니다 한 사람. 한 사람. 주님. 나도 주님이 필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을 만나는 한 사람이 나 자신이 되시기 바랍니다. 죄사함. 영원한 생명을 나누는 새로운 인생으로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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