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째날 오전// 베드로와 나의 마지막 소망 (요한 21:15-22)
Screen clipping taken: 2009-08-07, 오전 10:00
주여 나를 떠나소서. 회개 - 방향의 전환입니다. 감정적인 슬픔차원이 아닙니다. 길을 바꾸는 것입니다. 전향 - 간첩. 자수해서 광명을 찾자. 회개를 하는 것. 간첩-큰 죄를 졌습니다. 고구마를 따먹었습니다. 옥수수를 따먹었습니다. 회개를 아무리 해도 소용이 없습니다. 내가 간첩입니다. 이렇게 해야 회개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전향입니다. 옛적에 했던 잘못, 실수를 회개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간첩입니다. 이렇게 하는 것입니다. 어 너 간첩이야? 데리고 가서 용서하고 과거에 용서합니다. 너는 당성이 상당히 강했다. 황장엽 - 공산당의 괴수였습니다. 그러나 자수해서 큰 대우를 해줍니다. 죄를 용서해주십니다. 이것이 회개하는 것ㅇ비니다. 회개는 정치적인 용어입니다. 전향하는 것이 회개입니다. 마귀의 통치. 우리의 욕심을 따라살게하고, 마귀를 섬기며 살게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회개하고 돌이켜서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입니다. 국민의 의무를 다하면서 사ㅡㄴ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며 사는 것입니다. 이것이 회개입니다. 회개하는 간첩이 국민의 대우. 국민의 대우 - 경범죄. 횡단보도를 건너다가 걸렸습니다. 자수는 한번하는거야. 회개는 한번만 하는 것입니다. 간첩이 자수했다가 남한에 와서 죄를 지을 수 잇습니다. 그사람은 벌을 받지만 간첩죄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간첩죄에 횡단보도 범한 것을 처벌하지 않습니다. 간첩죄는 자수해서 용서를 다 받아씃ㅂ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는 부지중의 실수를 해도용서하십니다. 누가 정죄하리요. 누가. 어떤 것도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예외는 있습니다. 남한으로 전향한 사람이 다시 북한으로 돌아가면 그것은 안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 다음에 천국에 가고. 좋은데 안 믿을 거야. 다시 공식적으로 의지를 발동해서 예수를 부인하면 안됩니다.
베드로 - 주여 나를 떠나소서. 예수님의 대답 - 이제는 내 제자가 되라. 나와 같이 하자. 용서했다는 것입니다. 기억도 아니하는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이것이 내용입니다.
예수님을 처음 만나주심. 베드로의 주님의 만나는 사건 첫번째기간 - 육에 있으셨을 때의 만남. 두번째 - 부활후의 만남. 40일동안 이땅에 계실 때의 만남. 그 때 베드로의 만남. 세번째 만남 - 성령으로 만나심.
첫만남, 두번째만남 - 갈릴리바다. 가버나움. 게네사렛 등의 여러 도시가 잇었습니다. 디베랴바다에서 잇었던 일. 고기를 잡았는데 한마리도 잡지 못함. 오른편에 그물을 내리라.
1. 왜 주님은 네가 나를 사랑하는가?에 대해 세번이나 물으셨나? (15-17)
왜 이렇게 물어보셨는가? 처음 만나서 이런 말씀을 하시지 않앗습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3년간이나 했습니다. 그런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것ㅇ비니다. 초신자에게 말씀하신 것이 아닙니다 신앙생활을 했던 사람에게 물어보시는 것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주님을 따라다니다 보면 지나보면, 권태기처럼 올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뒷전이고 일에만 빠져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ㅏㄷ. 예수님은 뒵전이고 일을 사랑하게 됩니다. 계2 - 엡교회를 책망하셨습니다. 처음사랑을 버렸다고 말씀하셨습니다.촛대를 옮기리라. 그 사랑에 감격하여 잠못을 이뤘던 기억. 그러나 지금. 너가 나를 사랑하느냐? 두번째. 물어보신 이유가 있습니다.
성경의 강령은 사랑입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가장 중요한 것을 물어보셨습니다.신랑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다른 것을 아무리 많이 해도, 헌금, 봉사, 불사르게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끝입니다. 신랑, 신부에게 가장 중요한 것. 사랑입니다. 뜻을 다해 주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것입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라아하는 것입니다.
군포, 친구 장모님. 집에 와계신데. 친구의 집으로. 장인어른이 오시기 전에 일을 처리하라. ^^
예수를 믿는 것은 굉장한 일입니다. 마음을 다해 사랑할 수 잇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자다가도 벌떡일어날 일입니다. 목숨을 다하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사랑은 허락해야 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전능하시고, 거룩하시고, 하나님의 위대한 신간성.?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부족해도 사랑을 합니다. 그런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좋은 친구를 소개하는 것. 그분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분을 이용해먹을려고 하는 것. 자기 좀 도움을 받으려고하지, 깨끗한 동기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이용해서 이런 저런 도움을 받으려고 하지 자체를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지금 우리는 어떻습니까? 처음 주님을 영접하는 것입니다 삼년동안 예수님과 동역했던 베드로. 그런 베드로. 많은 크리스천 - 여기만 교회냐? 다른 교회로 가버립니다. 예수님을 이용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해 먹을려고 합니다. 부족하고 어려운 일이 있으면 감싸주고 감당해줍니까?
제가 아는분 한분. 목사를 사랑할 대상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할 대상입니다. 가룟유다가 예수님을 이용했습니다. 모든 사람은 사랑할 대상이지 이용할 대상이 아닙니다. 원수도 사랑해야합니다.
2. 양을 치게 되는 베드로에게 주님이 주신 마지막 영광(소망)은 무엇인가? (19)
양을 먹이라, 치라. 고기를 낚는 것보다 키우는 것입니다. 내양을 키워라. 사람을 먹이고, 치는 일을 해야할 사람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양을 먹이고 사랑하는 것. 할머니, 할아버지가 되면 아이들이 이쁩니다. 내 양을 쳐라. 이것을 하는 베드로에게. 마지막 소망. Last Vision. 마지막 소망. 믿음 소망 사랑 중에 무엇이 제일 좋습니까?
소망 - 롬8:24 -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니. 소망은 그렇게 귀중한 것입니다. 환란과 인내와 연단을 통해. 소망을 가져야합니다. 이땅에서 가장 마지막 소망이 무엇인가? 맨 마지막. 결론을 잘내야합니다. 이땅에 있는 것 중에 가장 좋은 소망은 무엇입니까? 죽는 것이 마지막 소망입니다. 다른 것을 잘 하다가도 죽음을 잘 못하면 안됩니다. 제일 마지막을 잘해야합니다. 마라톤 42.195 아무리 잘달려도 마지막을 통과를 잘해야합니다. 봉사를 잘하고 전도도 잘하고. 죽음까지도.
1) 성경적 죽음관
맨 마지막으로 영광. 예수믿는 사람의 죽음은 검은 색이 아닙니다. 죽음은 망하는 것이 아닙니다. 죽자마자 지옥에 가는 죽음이 아닙니다. 죽음 앞에서는 아무도 소용이 없습니다. 믿는 사람의 죽음. 하늘문이 열립니다. 김활란 목사 - 밝은 노래를 불러라. 죽음은 희망입니다. 천사가 와서 우리를 데려가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슬퍼해야합니다.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안믿는 사람이 우는 것은 당연합니다. 믿는 사람의 장례식 - 천국환송예배. 죽음을 두려워하면 안됩니다. 성경적 죽음관을 가져야합니다. 죽음은 주안에서 복된 것입니다. 죽음에 대해 소망을 심어 줄 수 있습니다.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가르침 - 성경적 죽음관을 가지지 않으면. 우리의 죽음이 바꿔졌습니다. 축복으로 바뀌어 졌습니다. 죽음이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예수님은 죽음의 축복을 받으신 것입니다. 죽음의 복. 이 복을 받으면 얼마나 담대하겠습니까? 죽음으로 영광으로 돌리는 것입니다. 주안에서 죽는 것이 좋다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마귀의 권세-사망권세입니다. 죽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을 때. 사망권세를 떠납니다.
시편 116:15
계시록 14:13
2) 바울의 고민
Screen clipping taken: 2009-08-07, 오전 11:27
빌립보서 1:20-24
남을 위해서 하는 것입니다. 죽음을 통해 영광을 돌려야합니다. 가장 귀한 것으로도 영광을 돌려야합니까?
스데반의 죽음을 굉장히 자세하게 묘사한 사람입니다. 스데반의 죽음. 사도행전6 - 하나님의 영광. 인자가 하나님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주예수여 내 영혼을 받으시옵소서.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자. 현장의 감독 - 사울. 거기의 책임자가 사울. 증인. 모든 책임을 지는 자. 사형집행관. 거기서 돌로 칠때 책임은 사울입니다. 하나님의 역사를 대적하는 극한 죄를 범함. 사울의ㅓ 씨를 말려야하는 죄. 그러나 스데반의 기도. 그래서 용서하셨습니ㅏㄷ. 그래서 9장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당당히 나가는 바울에게 주님이 나타나셨습니다. 스데반을 죽인 것이 바로 나를 핍박한 것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을 건드린 것은 예수님을 친것입니다. 이것이 주님의 법칙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그에게 나타나서 용서하셨습니다. 용서하고 변화시킨 것입니다. 누구 덕분입니까? 그를 죽으면서 바울을 바뀌었습니다. 스데반 - 이름이 없었습니다. 개똥이. 점박이.. 이름이 없는 사람도 많아습니다. 것모습. 2000년전 사람. 그 사람의 외모를 보고 주로 이름을 지은 사람. 스데반 - 면류관이라는 뜻입니다. 이름이 굉장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실 것입니다.
주안에서 죽는 것을 복되게 하시는 분. 회사의 중역으로 있다가 너희는 가라.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가? 내가 어떠한 죽음으로 영광을 돌려야하는가? 내가 어떠한 죽음으로 영광을 돌려야하는가? 죽음. 이렇게 놀라운 은혜를 받은 내가. 너는 제자를 삼는 일을 해라. 주님이 부르시는대로 하세요.
3. 당신은 마지막으로 어떻게 영광을 돌리길 원하는가?
정해송 - 죄.회개. 죄사함을 받는다.
이화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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