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자: 2009. 7. 17
2.성경: 갈3:13-14
3.제목: 우리의 저주를 끊으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
평생을 율법을 지키면서 살았던 종교인은 저주를 받고, 세리와 창기는 축복과 은혜를 받음. 종교인 공로를 의지함. 교회안에서도 은혜가 많을 것같은 사람들이 의외로 은혜가 없는 경우가 많음. 신앙의 핵심은 자기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의지하는 믿음에 있습니다. 이것이 은혜로 들어가는 신앙의 시작입니다. 자격이 없는 선물이 은혜입니다. 그 선물을 하나님이 주십니다.
1.율법의 저주를 끊으신 예수님(13)
죄인을 저주에 빠뜨리는 것은 율법입니다. 죄인은 율법을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매년마다 율법을 지킬수없는 것 때문에 짐승을 잡아서 내죄대신 속죄제물로 드렸습니다. 구약의 백성들도 율법아래살아서는 아무도 율법을 지킬 수 없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신약에 와서 매년 반복해서 드리는 속죄물 = 예수님을 잡아드림으로 속죄제를 단번에 파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죄문제를 해결하신 유일한 방법입니다. 친히 저주가 되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를 받은바되사.. 예수님이 친히 우리의 저주가 되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받아야할 저주를 예수님이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 안에서는 율법으로 정죄할 사람이 없는 것입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의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는 시대에 살게된 것입니다. 말씀을 영으로 들어라. 종교생활하지 말아야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의문으로 지식으로 하는 것은 죽이는 것입니다. 왜 우리의 저주를 이미 담당하셨는데, 왜 스스로 버려진 율법을 주어다가 스스로 뒤집어 씁니까? 율법의 저주아래 있지 않다는 것을 선포해야합니다. 오늘날의 많은 교회, 교인들의 문제. 영으로 섬기는 것이 아니라, 육신으로 섬기기에 성령의 생명에서 떠나게 된 것입니다. 바리새파 - 율법의 정통 주의. 율법을 가장 잘 못지키는 사람 - 세리, 창기. 예수님이 이땅에 오셔서 우리의 율법의 저주를 풀어주시기 원하시는 예수님. 가장 먼저 풀어주신 부류의 사람이 누구입니까? 바리새인을 먼저 풀어주신 것이 아닙니다. 은혜의 1순위는 세리와 창기였습니다. 지금도 십자가의 은혜는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저주아래있는 사람에게 먼저 그것이 끊어지는 은혜가 임합니다. 율법주의자들의 모순입니다. 불공평합니까? 자기는 율법의 저주에 있게 하고, 그들은 먼저 귾어져서 은혜에 들어가는 것. 이것이 바로 은혜의 개념입니다.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죄인에게 임하기 때문입니다. 공로가 있는 의인에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 공로가 없는 죄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율법주의 안에 있는 사람은 은혜가 있는 사람을 판단합니다. 형편없는 행위 불성실한 행위. 늘 바인들은 그들의 행위를 판단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기준은 너희야 말로 너희가 자격이 없다. 세리와 창기야말로 그들이 자격이 있다. 이것을 이해해야 은혜로 신앙을 하게 됩니다. 이것을 이해해야 은혜의 시대에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율법은 값없는 은혜를 거부합니다. 값없이 주기 때문에 그것을 거부합니다. 공로없이 받는 것을 거부합니다. 자기 공로가 하루아침에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혼적으로 들으면 오해를 합니다. 이말을 영적으로 이해해야합니다. 많은 교인들 중에도 자기 스스로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 좋은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사는 사람치고 은혜안에 들어가는 사람이 적다는 것입니다. 그사람이 그렇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라, 정말 진실되게 살려는 사람. 율법의 저주에 빠지게 되지 은혜로 들어가게 되지 않습니다. 의인은 없나니 아무도 없습니다. 착하게 살아라. 올곳게 살아라. 착하게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최소한대로 올바르게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살려고 한다고 그렇게 살려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나 지킬 수 있습니까? 거기서 올무에 빠지게 됩니다. 나는 그렇게 살려고 했다. 이런 오만 불손한 죄를 짓게 되는 것입니다. 남을 정죄하면서 살게 됩니다. 자기 스스로 올바르게 살려는 사람이 은혜가 있고, 성령의 체험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성경의 한구절이라도 제대로 지킬 수 없습니다. 해아래 아무도 없습니다. 이것이 율법주의자들이 빠지는 저주입니다. 자기도 지킬 수 없으면서 남을 판단하는 죄를짓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빨리 포기 해야합니다. 나는 내스스로 이룰 수 없느 자라는 것을 인정해야합니다. 그때부터는 은혜밖에 의지할 것이 없습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만이 은혜속으로 들어갑니다. 은혜속에 들어가는 것이 자존심이 상하는 사람은 은혜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의문의 묵은 율법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2.하나님이 주시는 아브라함의 복(14)
율법의 저주가 끊어지는 사람은 아브라함의 복이 주어집니다. 율법의 차원에서 벗어나야 은혜로 들어갑니다. 율법의 차원에는 판단과 정죄의 차원. 은혜가 열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의 복에 참예하는 기회를 주십니다.
1)복의 대상
14-하나님의 복이 이방인에게 먼저. 이것이 은혜의 개념입니다. 그 많은 공로에도 불구하고 저주에 빠지는 유대인들. 이방인들은 놀라운 축복. 이것이 은혜의 개념입니다.
롬 9:30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의를 좇지 아니한 이방인들이 의를 얻었으니 곧 믿음에서 난 의요
롬 9:31 의의 법을 좇아간 이스라엘은 법에 이르지 못하였으니
롬 9:32 어찌 그러하뇨 이는 저희가 믿음에 의지하지 않고 행위에 의지함이라 부딪힐 돌에 부딪혔느니라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믿음에서 난 의다. 의로운 행위가 나의 의가 아니다. 믿음에서 난 의다. 하나님의 의는 믿음으로 만 얻을 수 있습니다. 부딪힐 돌에 부딪히게 됩니다. 어떤 행동, 다른 사람, 말씀, 셀, 목회자… 늘 부딪힐 것 투성이입니다. 교회가 행하는 것마다 늘 부딪힙니다. 예수님이 하는 일마다 부딪히는 것입니다. 하는 것 마다 늘 부딪히고 정죄를 받습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율법에 하는 사람은 늘 부딪힙니다. 실족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죽었다 깨어나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은혜의 개념입니다. 저사람은 늘 놀고, 죄를 지을 때 나는 열심히 신앙을 했는데.. 저사람은 저렇게 은헤를 받는데. 나는 늘 오만가지 불평이 있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것이 은혜의 개념입니다. 율법은 하나님의 복을 자기 공로, 대가로 받으려고 합니다 공짜로 받는 것이 은혜입니다. 율법으로 신앙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이 신앙을 하면서도 어떤 감사가 없습니다. 하나님에대한 쓴뿌리, 원망이 있습니다.
돌아온 탕자. 큰 아들-아버지재산을 축낸적도 없는 착한 아들. 둘째-탕자. 정작아버지에 대한 사랑을 누가 체험합니까? 둘ㅉ아들입니다. 사람앞에 성실한 율법주의자. 감사나 기쁨은 없습니다. 감사와 기쁨이 없습니다. 짜증이나 내고, 언제 끝나는지 멀뚱거리는 것입니다. 남 찬양하는 것을 구경이나 하고 있는 것.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에 관심이 없습니다. 하나님께 의무적으로 신앙을 합니다. 예배도 의무적으로 하고, 기쁨이나 은혜는 없습니다.
롬 4:4 일하는 자에게는 그 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하는자. 하나님께 늘 빚진것을 받으려고 합니다. 불평과 원망으로 살려고 합니다 은혜로 사는 사람은 잘하는 것도 없고, 기쁘게 해준 것도 없는 나의 행위에도 불구하고 구원의 혜택을 준것. 이것이 너무나 감사하고 기뻐서 찬양하고 영광을 돌립니다. 찬양을 해도 감격이 있습니다. 하나님때문에 늘 기쁨이 있습니다. 하나님 때문에 기쁨이 있어야합니다. 교회에 와서 빚쟁이 처럼 앉아 있는 것.
롬 4:5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나니
내가 한 것이 없고 잘한 것이 없어도 은혜를 주시는 하나님. 공로를 믿음으로 은혜를 받는 것. 그래야
아브라함의 복. 믿음의 조상입니다. 아브라함의 모습. 훌륭한 가문에서 그럴만한 자격이 없었습니다. 기라성 같은 자기의 조상에 비해 자기는 너무나 초라한 집안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른채. 우상을 섬기는 조상. 자랑거리가 없는 인생이었습니다. 그 결과 그 집안에 우상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자기의 아버지보다 먼저 죽는 자식이 생겼습니다. 아브라함은 75세가 되어도 자식이 없는 저주받은 가정이었습니다.
Screen clipping taken: 2009-07-17, 오후 10:15
자격이 없었는데 하나님이 택하셨습니다. 아무 자격과 공로가 없는 가정을 택하셨습니다. 이렇게 분명히 성경이 말씀하셨습니다. 은혜의 방법으로 신앙하는 것보다 율법의 방법으로 신앙을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 증거가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경건한 사람 - 그러나 영적인 능력은 무기력한 사람이 있습니다. 은혜가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실제의 삶에서 경건한 사람이 있는데도, 기쁨, 능력, 변화도 없습니다.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신앙을 하고, 반듯하게 한 사람일수록 은혜가 없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동안 잘하고 있던 자기 신앙이 공로가 된 것입니다. 신앙을 자기 성실 자체에 의지합니다. 남보다 잘하는 자기의 열심을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속는 것입니다. 그런사람이 무슨 죄를 짓습니까? 하나님은 그런 사람에게 이야기를 합니다.
롬 10:3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하였느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하지 않고 하나님의 의를 불복종하는 죄를 짓습니다. 변화도 없고 성령의 능력도 없는 것입니다. 잠26:2 - 까닭없는 저주는 없는 것입니다. 반면에 교회안에 신기한 일은 잘 못살아도 주님의 은혜와 사랑은 잘 체험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기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예수님이 왜 십자가에 돌아가셔야 합니까? 다시 말씀드리지만 하나님의 은헤는 자격없느 자에게 주시는 공짜로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신앙의 핵심입니다. 그 은혜가 얼마나 감격적입니까? 예수를 믿지 않다가 믿은 사람. 내가 구원을 받다니. 나같은 자가 은혜를 받다니. 그 감격이 있습니다. 그 은헤로 신앙을 합니다. 신앙을 오래하면 할 수록 자격이 쌓입니다. 1년 뜨거운 사랑을 유지하는 사람이 얼마나 됩니까? 직분을 많이 받을 수록 더욱 뜨겁게 해야합니다. 벌써헌신하면 남을 판단하려고 합니다. 남보다 뭘하면 한달 새벽기도 나온 만큼 공로와 자격이 쌓이게 됩니다. 금방 그것이 공로와 자격이 됩니다. 바리새인들이 나쁜짓을 해서 율법주의가 된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았습니다. 십일조, 안식일, 나쁜짓 안했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자기의 공로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지 않고, 자기 의로 하는 것입니다. 한 것 만큼 자기의 공로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대신 받는 것을 원하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자기 영광이 가장 잘 드러나는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그 사람이 그것으로 영광받는 사람. 하나님은 그런 사람을 데리고 일하시지 않으십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브라함, 다윗을 택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복을 받기 원한다면 내 의를 내려놓고
2)복의 내용
(1)저주가 끊어짐
아브라함. 저주가 끊어짐.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 순종의액션. 순종하면 말씀이 역사합니다. 십자가의 저주가 끊어질 때. 그것을 믿음으로 받으며 아브라함과 같이 가정의 저주가 끊어질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실패와 낙담. 가정의 모든 저주가 끊어질 것을 믿어야합니다. 모든 저주는 말로 시작됩니다. 잠언 - 네 말로 잡히고, 바리새인 - 말에 좋은 말이 나온 적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에 대해, 절대 부정적이고 악한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저주는 자기 스스로 받는 것입니다. 늘 남이 못되기를 바라는 마음. 입술의 저주를 끊어야 내인생의 저주가 끊어집니다.
(2)복의 근원이 됨
창12:1-3. 큰 민족, 이름이 창대케됨. 복의 근원 - 자기 혼자 잘먹고 잘사는 것에 그치는 기복신앙이 아니라는 것. 나를 통해 율법의 저주아래있는 사람에게 예수의 복을 나누는 복의 통로가 된다는 것. 나한사람을통해 나의 가정의 적주가 끊어짐. 자기 혼자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열방. 나와 부딪히는 사람. 나를 인해 복을 받는 것. 나의 축복. 나를 통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복을 받았는가? 이것이 나의 상급입니다. 내가 복을 받기만하고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하는 그런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상급이 없습니다. 복의 근원이 되는 사람의 특권. 그사람을 축복하는 사람에게 축복을 받음. 하나님이 복을 주시는 사람을 잘되게 하면 그 복이 나에게 임합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인생입니다. 내가 복의 근원이 되어야 내 가정이 복의 통로가 되고 내 세대 이후의 세대가 축복의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저주의 통로가 됩니다. 나를 만나는 사람마다 저주의 말이 됩니다. 나의 심판거리가 됩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나누어 주는 축복의 통로가 되시기 바랍니다.
(3)성령의 약속을 받음
예수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는 자에게 주심. 율법주의자들의 한계. 뼈빠지게 일해도 한가지 얻지 못하는 것.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아무리 반듯하게 신앙을 해도 성령의 권세는 없습니다. 이것이 그삶의 한계입니다. 율법은 우리의 의때문에 성령을 소멸합니다. 마음이 싸늘합니다 절대 그사람은 성령을 받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절대 우리의 공로와 의로 자기자신을 섬기는 것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늘 신앙생활이 힘이 든 것입니다.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으면서, 일은 제일 많이 하면서 기쁨은 제일 없는 인생. 불평은 제일 많고 능력은 없는 인생. 기가막힙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 자체도 내힘으로 안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아야 성령을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갈 5: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아무리 율법에서 벗어나려고 해도 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등잔에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언제나 율법으로 돌아갑니다 얼마나 뜨거운가? 이것이 문제가 아니라 지금 등잔에 기름이 있는가? 이것이 문제입니다. 조금 전에도 있었는데, 나는 뜨거운데. 이것은 필요없습니다. 인자가 올때 믿음을 보겠느냐? 성령의 기름부으심을 항상 준비하는 자이어야 합니다. 그런 사람만이 성령으로 한다는 보장이 됩니다. 내 힘과 의가 들어가면 소멸이 됩니다.
끝까지 신앙을 유지하기 위해 늘 겸손의 갑옷을 입어야 합니다. 공로. 바울의 공로. 그러나 끝까지 달려간 것은 내가 한 그것을 의지하지 않았습니다. 내가 되었다하고 잡았다하는 즉시 은혜는 없습디ㅏ.
은혜로 섬겨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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