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일자: 2009. 2. 1
2.성경: 막5:24-34
3.제목: 들러리가 아닌 주인공이 되라
4.찬송: 210장
모든 영화에는 주인공, 조연, 엑스트라. 주인공위주로 영화가 진행됨. 엑스트라 중심의 영화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도 영화같은 것으로 생각하면 비슷한 것이 많이 잇습니다. 주인공과 들러리. 창세기부터 요한계시록까지 주인공 중심의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악인도 악역을 감당하기 위해 사용하신 것입니다. 항상 같이 남겨두십니다.
요셉의 주위에 형들. 보디발. 처. 관원장. 바로….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한 사람 주인공을 위해 등장합니다. 그 때 그 때는 주인공 같습니다. 그들이 더 승리하고 주인공 같아 보입니다. 요셉의 비전을 이루는 들러리로 사용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쓰레기로 피해만 당하는 요셉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나중에서야 알게되었습니다. 왜 엉뚱한 요셉이 주인공이 되었는가? 요셉한사람만이 하나님 중심적으로 살았기 대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스르면서 살았습니다. 모두 악역으로 살았습니다. 어느누구도 하나님을 위해 사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비전을 위해서 하나님을 위해 살고자 하는 사람이 하나님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공이 되는 신앙생활을 하시기 바랍니다.
1.하나님 나라의 들러리(24)
회당장 야이로가 간청으로 예수님을 모시고 가는 도중.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보러 나옴. 구경하러 나옴. 자기들의 실제 인생 문제를 가지고 나온 것이 아님. 자기 심령의 간절함으로 나온 것이 아니라 야이로의 딸이 어떻게 되는지 구경하러 나옴.
주인공이 나오기 전부터 예수님을 따라나온 사람들. 먼저 예수님께 나온 사람들. 아무도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난 사람은 없었습니다. 한 사람만 유일하게 나옴.
교회에도 수십년 다른 사람보다 먼저 나온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나온 주인공에 밀리는 사람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빠지지 않고 나옵니다. 많은 예배를 나오지만 나의 문제를 해결해봐야 겠다는 믿음으로 나온 적은 없었습니다. 군중들은 남들이 어떻게 되는가? 구경하러 나오지 자기가 뭐하려고 나오는 사람은 없습니다. 자기가 전도한 가족, 친척들은 계속 리더로 자라나가는 중간에 자기는 군중으로 남아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군중으로 남는 것입니다.
군중으로 남는 신앙이 되면 않됩니다.
2.하나님 나라의 주인공(25-34)
1)육신의 고난(25-26)
12년동안 의원을 찾았던 여인. 세상적으로 부족함이 없었던 부자였음. 고난이라는 사건을 통해서 영적인 브레이크를 걸어주심. 육신의 고난을 통해서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나오는 과정은 하나님이 주시는 거룩한 고난을 통과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는 과정이 없었습니다. 잘나가는 인생의 전성기에 불치병을 주셨습니다. 혈루증-부정한 죄. 죄. 저주를 상징합니다. 12년동안 자기가 의지하는 모든 것을 포기하게 하셨습니다. 12-완전수. 세상 누리는 것을 끊는 완전한 수. 많은 의사를 찾아다니면서 병이 낫지 않음. 하나님이 쓰시고자 하시는 사건. 사건을 통해서야 그사람을
시 119: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난이 있어야 자세가 달라집니다. 태도가 달라지지 않는 이상. 예배도 달라지지 않습니다. 그 예배가 그 예배가 됩니다.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세상이 달라져 보이는 것입니다. 내가 바뀌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우리의 부한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고난이라는 가시입니다. 고난이 주어집니까? 그대로는 바뀌어지지 않기 때문에 주시는 하나님의 고난입니다. 고난을 줘서 주는 기회. 홍해바다에 심판을 받게될 수도 있습니다.
2)믿음의 능력(27-29)
불치병도 고치고, 문둥병도 고친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었습닏. 내가 달라지면 예수님이 다라라지게 보이는 것입니다. 건강, 돈이 있을 때는 예수님의 말이 별로 잘 들리지 않앗습니다. 그러나 고난중에 예수님의 말씀이 들리게 됩니다. 귀를 열어주시기 위해서 영혼을 곤고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없을 때는 항상 말씀이 똑같습니다. 무의미합니다.
욥 36:15 하나님은 곤고한 자를 그 곤고할 즈음에 구원하시며 학대 당할 즈음에 그 귀를 여시나니
고난중의 말씀은 전혀다르게 들립니다. 왜 다르게 들립니까? 영으로 들리게 때문입니다. 영으로 들려야 달라지는 것입니다. 곤고할 즈음에 말씀이 영으로 들리는 귀가 열리는 것입니다.
롬 10:17 - 믿음은 들음에서 납니다. 왜 군중으로 남습니까? 말씀이 믿음이 되지 않기 때무입니다. 믿음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나의 혈루병이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만대면 낫게 되리라는 믿음. 이런 믿음을 가진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지식으로 교훈으로 밖에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내가 믿음이 있다고 해도, 무엇을 가지고 증거가 됩니까? 믿는대로 자기에게 나타나는 것이 증거입니다.
그 믿음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은 자기가 압니다. 믿음이 능력을 체험하는자가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다른 곳을 쳐다보지 말고 예수님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비비고 코를 닦고, 아무리 예수님 근처에 왔어도 구경꾼으로남으면 들러리가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능력을 체험하시기 바랍니다. 교회를 오래다닌 사람이 간증을 하는 거이 아닙니다 하나님나라의 주인공은 예수님을 만나는 자가 주인공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주인공이 되시지 않으면 하나님이 아무 능력이 없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속으면 안됩니다. 누구든지 먼저된자는 나중되고 나중된 사람이 먼저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만날 각오를 가지고 와야 합니다. 군중이 많은 교회가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가 많은 교회...
3)예수님의 찾으심(30-34)
예수님이 인정하시는 사람이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이 됩니다. 무리가 수없이 애워싸 밀어도 예수님이 애워싸 미는 것을 아십니다. 아무에게도 예수님의 능력이 나가지 않았는데. 혈루증 여인이 믿음으로 손을 대었을 때 예수님의 능력이 나갔습니다. 많은 군중-혈루증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는데 방해거리가 될 뿐입니다. 교회가 군중들만 많이 모이면 진짜 훈련을 받으려는 사람에게 방해거리가 될 뿐입니다. 군중을 하시는 법은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군중은 많이 있습니다. 항상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많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아는 사람은 적습니다. 적은 숫자에 속해야 합니다.
마7 - 좁은 길로 가라. 그길은 생명의 길입니다. 넓은 길은 사망의 길입니다군중속에는 편하고 문제가 없습니다. 아무 부담이 없습니다. 군중속에 있다가 그대로 죽는 것입니다. 그길은 사망입니다. 길부터 계속 좁은 길입니다. 남들이 가지 않는 길입니다. 생명의 길은 바로 그런 길에 있는 것입니다.
눅19 - 여리고. 그냥 구경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뭘 구경하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모든 군중들은 기적을 구경하러 나왔습니다. 소문을 듣고 다 나왔습니다. 자기의 갈급한 문제. 목적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뒤늦게 나왔더니 군중들이 가득차있었습니다. 항상 방해거리가 되었습니다. 간절히 찾으려는 삭개오의 방해거리만 되었습니다. 군중에서 나와서 뽕나무로 올라갔습니다.
수많은 군중은 한 사람도 부르시지 않았습니다. 왜롭게 올라갔는데. 삭개오 한 사람의 이름만 부르셨습니다. 군중을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나는 한사람을 부르셨습니다.
빨리 군중에서 나와야 합니다. 군중이 주는 재미와 편안함에서 빨리 나와야 합니다.
요8 - 이른 아침부터 군중들이 모였습니다. 정작 그날의 주인공이 누구인가 보십시요. 아무도 그날에 죄사함받은 군중은 없었습니다. 노인부터 어린이까지. 정작 그날의 주인공. 자기들이 죽이려고 하던 간음한 여인이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주인공으로 교회를 다닙니까? 주인공을 죽이려는 자세로 교회에 다닙니까? 항상 요셉, 다윗, 간음한 여인을 핍박하듯이 주인공은 군중의 핍박을 받습니다.
하지만 에수님은 항상 누구를 택하십니까? 간음한 여인의 죄를 드러내던 군중은 여인으 구원을 위해 들러리를 선것 뿐입니다. 삭개오의 구원을 위해 들러리를 선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멸시 핍박 정죄에서 벗어나기 위해 군중에서 나와야 합니다.
의로운 군중을 부르시지 않고, 죄인된 한사람. 혈루증. 죄의 상징. 고칠수 없는 부정한 죄를 뜻합니다. 죄를 용서함받은 죄인이 들러리 입니다. 예수님의 잔치석에는 항상 죄인들이 있었습니다.
막 2:16 바리새인의 서기관들이 예수께서 죄인과 세리들과 함께 잡수시는 것을
보고 그 제자들에게 이르되 어찌하여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가
막 2:17 예수께서 들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 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부르러 왔노라 하시니라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은 용서받은 죄인입니다. 들러리-죄인들을 정죄하고 판단하는 사람입니다. 의인을 훈련하는 훈련관. 영화의 악역입니다. 괴롭게하던 그일을 하다가 무대에서 사라지는 것입니다. 들러리. 자기의 역할 때문에 나온 것입니다. 자기의 역할이 끊나면 사라집니다. 수많은 들러리가 성도, 목회자, 신실한 성도를 훈련하기 위해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주인공많이 자기 역할을 해야합니다.
요일 2:19 저희가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 만일 우리에게 속하였더면 우리와 함께 거하였으려니와 저희가 나간 것은 다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함을 나타내려 함이니라
우리에게 속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간것입니다. 들러리입니다. 예수님의 교회에는 한영으로 속한자만 남게됩니다. 가정에 누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러리, 주인공입니까? 누가 주인공의 들러리가 되는가? 보면 알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들러리가 되어야 하지만, 내가 그사람이 되서는 않됩니다. 주인공만 끊까지 남고, 역할이 남습니다. 엑스트라는 계속 바뀝니다.
2009년에는 변두리에서 중심으로, 실업자에서 중심으로 .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남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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